오늘의 장면
2023년 기준, 미국 S&P 500 기업의 여성 CEO 비율은 8.8%다. 1995년 당시 그 수치가 0%에 가까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진전처럼 보인다. 그러나 같은 해 맥킨지와 LeanIn.Org가 공동으로 발표한 '직장 내 여성(Women in the Workplace)' 보고서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관리직 진입 단계인 '매니저' 직급에서 여성의 비율이 2022년 대비 오히려 줄었다. 꼭대기가 아니라 계단의 첫 번째 칸에서 균열이 생기고 있다.
1970년대셰릴 샌드버그 이전의 시대: 캐서린 그레이엄과 유리천장의 발명
1972년, 캐서린 그레이엄은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으로서 닉슨 행정부의 압력에 맞서 워터게이트 보도를 강행했다. 그녀가 그 자리에 오른 경위는 오늘날의 기준으로도 기이하다. 남편 필립 그레이엄이 사망한 뒤 회사를 물려받은 것이다. 스스로 자서전 『퍼스널 히스토리』에서 고백했듯, 그녀는 처음에 자신을 경영자로 여기지 않았다. 당시 미국 언론계에서 여성 임원은 구조적 예외가 아니라 생물학적 이변 취급을 받았다.
그레이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돌파한 것은 바로 금융 역량이었다. 1971년 워싱턴 포스트의 기업공개(IPO)를 이끌었고, 이후 워런 버핏을 이사회로 끌어들이며 신문사를 미디어 자본으로 전환시켰다. 그녀의 성공은 '편집권의 독립'이라는 서사로만 소비되었지만, 실질적 기반은 자본 조달 능력과 투자자 신뢰였다. 오늘날의 여성 리더십 담론이 종종 놓치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권력은 이념이 아니라 자본 접근성 위에서 작동한다.
1970년대 미국 기업 금융 구조에서 여성은 신용 자체를 거부당했다. 1974년 평등신용기회법(Equal Credit Opportunity Act)이 제정되기 전까지, 미국 은행은 여성에게 남편 동의 없이 신용카드를 발급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그레이엄은 이 구조 안에서 상속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자본 통제권을 확보했다. 그것이 당시 시스템이 허락한 유일한 문이었다.
2013년셰릴 샌드버그와 린인의 경제학
2013년 셰릴 샌드버그가 『린인(Lean In)』을 출간했을 때, 이 책은 단순한 자기계발서가 아니었다. 하나의 금융 명제였다. 여성이 협상 테이블에 더 가까이 앉고, 더 많이 요구하고, 더 오래 남아있으면 소득 격차가 좁혀진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2010년대 중반 미국 여성의 중간 임금은 남성 대비 82센트 수준이었고, 이는 1980년의 64센트에서 상당히 좁혀진 수치였다.
그러나 샌드버그의 명제에는 구조적 전제가 숨어있었다. 린인 전략은 이미 기업 시스템에 진입한 여성에게만 유효하다. 문 앞까지 가는 것 자체가 막혀있는 여성에게 이 책은 처방전이 아니라 또 다른 자책의 언어가 되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골딘은 202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연구에서 이 점을 명확히 짚었다. 여성 임금 격차의 70% 이상은 직종 선택이나 개인 협상력의 문제가 아니라, 유연성에 프리미엄을 붙이는 노동시장 구조 자체에서 비롯된다.
샌드버그의 시대에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계층은 대졸 이상, 대도시 거주, 금융·기술 섹터 종사 여성이었다. 이 집단 바깥에서는 린인의 과실이 거의 닿지 않았다. 2019년 기준 미국 여성 금융관리자 비율은 54%였지만, 같은 해 헤지펀드 포트폴리오 매니저 중 여성 비율은 11%에 불과했다. 의사결정 자본에 가까울수록 격차는 더 넓었다.
이번에는 무엇이 다른가
그레이엄의 시대는 제도적 배제가 문제였다. 법이 여성을 경제 주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샌드버그의 시대는 문화적 편견이 문제였다. 법은 평등을 선언했지만 관행은 그렇지 않았다. 2020년대의 문제는 그 어느 것과도 다르다. 진전이 멈추는 것은 노동시장이 제공하는 유연성의 가격이 여전히 불균등하게 책정되어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원격근무 축소가 그 증거다. 2023년 주요 금융기관들이 사무실 복귀를 의무화하자, 경력 단절 위험이 높아진 것은 주로 자녀를 둔 여성 직군이었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자녀가 있는 여성 관리자는 그렇지 않은 남성 동료보다 번아웃 비율이 약 1.5배 높았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 배분 비용의 문제다. 린인이 해결하지 못한 것은 결국 돌봄 경제의 금융화, 즉 누가 재생산 노동의 비용을 부담하는가라는 질문이다.
Penseur의 판단
그레이엄은 상속 자본으로 시스템에 진입했고, 샌드버그는 개인 전략으로 시스템을 설득했다. 두 경로 모두 구조를 바꾸지는 못했다. 직장 내 여성의 진전이 다시 후퇴하는 국면이라면, 주목해야 할 지표는 CEO 숫자가 아니라 관리직 첫 진입 단계의 성비다. 그 숫자가 3년 연속 하락한다면, 20년 뒤 이사회 구성도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봐야 한다. 진단의 기준을 꼭대기가 아니라 계단 아래에 두어야 한다.
참고자료
McKinsey & LeanIn.Org — Women in the Workplace 2023
Nobel Prize — Claudia Goldin, Economic Sciences 2023
U.S.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 — Equal Credit Opportunity 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