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장면
2026년 6월, 미국 증시가 고점권을 맴도는 가운데 개인 투자자들은 포지션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팔지 않는 게 아니라 팔지 못하는 것이다. 애머트 인베스트먼츠의 수석투자책임자 베일러 랭카스터-새뮤얼은 이 현상을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고객들은 지금 '너무 일찍 빠져나가는 것에 대한 공포(fear of getting out)'를 느끼고 있다고.
1720년존 로: 시스템이 만든 매도 불능 상태
프랑스 재무총감 존 로(John Law)가 설계한 미시시피 컴퍼니의 주가는 1719년 500리브르에서 1720년 1월 최고 1만 리브르까지 치솟았다. 20배 상승이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은 상승이 아니었다. 로는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서인도 회사 주식을 담보로 한 종이화폐 발행량을 급격히 늘렸고, 그 결과 투자자들은 '팔면 손해'가 아니라 '팔 수 없는' 구조 속에 갇혔다. 매도 자체가 불가능한 유동성 함정이었다.
당시 파리 시민들은 주가가 고점에서 30% 이상 빠진 뒤에도 매도를 미뤘다. 로의 시스템이 계속 작동할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내가 팔면 손실을 스스로 확정짓는 셈이 된다는 심리가 결합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투자자들이 대규모 매도에 나선 것은 주가가 고점 대비 85% 하락한 이후였다. 손실 회피 편향은 이익을 얻는 기쁨보다 손실을 실현하는 고통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든다. 다만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손실이 실제로 더 강렬하게 경험되는지, 아니면 그렇게 인식될 뿐인지에 대한 논의가 아직 이어지고 있다.
현재와의 구조적 공통점은 분명하다. 당시에도 지금도, '시장이 더 올라갈 것'이라는 서사가 매도의 기회비용을 비정상적으로 높게 만들었다. 랭카스터-새뮤얼이 말하는 '너무 일찍 빠져나가는 것에 대한 공포'는 존 로의 시대에도 이름만 달랐지 내용은 같았다.
1999년앨런 그린스펀: '비이성적 과열'을 외치고도 매도를 권하지 못한 이유
1996년 12월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워싱턴 D.C.에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표현을 처음 썼다. 당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약 6,400포인트였다. 그런데 그 경고 이후 주가는 3년 반 동안 거의 두 배 더 올랐다. 2000년 3월 나스닥 종합지수는 5,048까지 치솟았고, 이후 2년 반 만에 78% 폭락했다. 그린스펀이 틀렸던 것이 아니다. 단지 너무 일찍 옳았을 뿐이다.
여기서 덜 알려진 사실이 있다. 그린스펀 본인도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내부 회의에서 "현재 자산 가격이 펀더멘털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반복적으로 발언했다. 그러나 그는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았다. 1998년 러시아 채무불이행(모라토리엄) 여파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붕괴가 겹치면서 오히려 금리를 세 차례 인하했다. 시장이 그를 긴축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붙잡은 것이다.
랭카스터-새뮤얼의 고객들이 포지션을 청산하지 못하는 이유와 그린스펀이 긴축 신호를 보내지 못했던 이유는 본질적으로 같다. 오른 시장을 꺾는 것은 틀릴 경우 감당해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 그 비용의 비대칭성이 사람과 기관 모두를 마비시킨다.
"The market can remain irrational longer than you can remain solvent." — 존 메이너드 케인스 (1936년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파생된 인용)
이번에는 무엇이 다른가
1720년의 공포는 제도적 강제였다. 존 로의 시스템은 매도 자체를 물리적·제도적으로 어렵게 만들었다. 1999년의 공포는 사회적 압력이었다. 팔면 시장 전체가 옳고 나만 틀린 사람이 됐다. 그런데 2026년의 공포는 더 내면화돼 있다. 알고리즘이 실시간 수익률을 눈앞에 보여주고, 소셜미디어가 매도한 사람의 '기회 손실'을 즉각 수치화해 조롱하는 환경에서, 투자자는 스스로 탈출의 문을 잠근다.
또 하나의 결정적 차이가 있다. 2026년 현재 미국 S&P 500의 주가수익비율(PER,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시장이 이익 대비 얼마나 비싼지 나타내는 지표)은 사이클 조정 기준으로 28~30배 수준이다. 이는 장기 평균(약 17배)의 약 1.7배다. 1999년 기술주 거품 정점에서의 44배보다는 낮지만, 2009년 금융위기 직전 수준(약 25배)보다는 높다. 역사적으로 이 구간에서의 10년 후 연평균 실질 수익률은 0~2% 범위였다.
Penseur의 판단
팔지 못하는 투자자가 많아진다는 것은 시장의 취약성이 가격이 아닌 심리에 축적되고 있다는 신호다. 매도 공포가 주류 담론이 됐을 때, 그것은 위험이 분산된 상태가 아니라 한곳에 집중된 상태를 뜻한다. S&P 500의 사이클 조정 PER이 30배를 지속적으로 상회하고, 동시에 10년 만기 미국 국채 실질수익률(물가상승률을 차감한 국채 수익률)이 2%를 넘어서는 구간에 진입한다면, 주식 리스크 프리미엄이 사라지는 시점으로 읽어야 한다.
팔기 두렵다는 감정은 시장 참여자 모두가 공유할 때 가장 위험해진다. 두려움이 합의가 되는 순간, 그 합의 자체가 위험의 본체다.
역사 속의 존 로도, 그린스펀도, 그리고 오늘의 투자자들도 같은 함정 앞에 섰다. 출구가 보일 때 나가지 않으면, 출구가 사라진 뒤에야 그 자리를 찾게 된다.
참고자료
Robert Shiller / Yale University — CAPE Ratio (Cyclically Adjusted P/E) 장기 데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