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유시장의 250년 신화, 국가가 항상 시장 안에 있었다

미국 자유시장의 250년 신화, 국가가 항상 시장 안에 있었다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미국 산업정책의 핵심 결정은 언제나 이 건물 안에서 내려졌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나

1791년,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영국 제조업을 따라잡으려면 관세 보호와 정부 보조금이 불가결하다고 주장했다. 건국한 지 불과 2년 된 공화국이 자유무역이 아니라 국가 주도 산업육성론을 국정 문서로 공식화한 것이다. 그로부터 250년이 지난 2022년, 미국 연방정부는 반도체지원법(CHIPS Act)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제조업 보조금으로만 약 3,90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형식은 달라졌지만 논리는 같다. 미국은 건국 첫날부터 국가와 자본이 분리된 적이 없었다.


숫자로 보면 무엇이 중요한가: 보조금, 관세, 그리고 구제금융의 회계

미국이 자유시장의 수호자라는 통념은 수치 앞에서 무너진다. 1860년대 이후 미국의 제조업 평균 관세율은 약 50%까지 올라갔고, 보호무역 기조가 유지된 수십 년간 그 수준을 유지했다. 같은 시기 영국이 자유무역을 설파하던 것과 정반대의 경로였다. 영국은 산업 패권을 손에 넣은 뒤 자유무역으로 선회했다. 물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간된 1776년부터 산업혁명 내내 자유무역 논의가 존재하긴 했지만, 정책으로 본격 채택된 것은 산업 우위가 확립된 이후였다.

20세기에도 패턴은 반복됐다. 대공황 직후인 1933년부터 1945년 사이, 연방정부의 GDP 대비 지출 비율은 평시 기준 약 3%에서 최대 43%로 팽창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국방비를 통한 민간 기술 이전은 계속됐다. 인터넷의 전신인 ARPANET은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DARPA) 예산으로 탄생했고, GPS는 미 공군이 개발했으며, 터치스크린 기술의 핵심 특허 중 일부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연구비를 받은 대학 실험실에서 나왔다. 애플 아이폰에 담긴 12개 핵심 기술 중 11개가 정부 자금 연구에서 비롯됐다는 마리아나 마주카토의 분석(2013)은 이 구조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가 투입한 긴급 유동성 지원은 최대 시점 기준으로 약 29조 달러에 달했다는 추산도 있다. 물론 이 수치는 보증, 대출, 매입 등 다양한 형태를 합산한 것이어서 단순 '지출'로 볼 수 없다. 그러나 핵심은 금액이 아니라 방향이다. 시장이 실패하자 국가가 즉각 개입했고, 논쟁은 개입 여부가 아니라 개입 방식에 집중됐다. 실제 작동 원리는 자유시장 원칙주의가 아닌 실용주의였다.


1862태평양 철도법과 국가 자본주의의 원형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링컨 행정부는 태평양 철도법(Pacific Railroad Act)에 서명했다. 법안의 골자는 단순했다. 유니언 퍼시픽과 센트럴 퍼시픽 두 민간 철도회사에게 철도 1마일(약 1.6km) 건설마다 연방 토지를 불하하고 정부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댄다는 것이었다. 두 회사가 최종적으로 받은 토지는 약 1억 7,400만 에이커로, 2024년 시가 기준으로 수십조 달러에 상당하는 규모였다.

당시 이 거래를 보는 시각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민간 기업가정신에 국가가 불필요한 특혜를 준다는 비판이었고, 다른 하나는 시장 혼자서는 완수할 수 없는 대륙 횡단 인프라를 국가가 뒷받침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두 철도회사 모두 이후 부채 재조정과 연방 감독위원회 설치를 거치며 사실상 준공공 기관처럼 운영됐다는 점이다. 민영화된 이윤과 사회화된 리스크. 이 구조는 1862년 철도에서 2008년 월스트리트까지 형태만 달리했을 뿐 같은 논리로 반복됐다.

오늘의 반도체 보조금과 구조적 공통점은 뚜렷하다. 지정학적 위협(남북전쟁 시기의 서부 통합, 오늘날의 기술 패권 경쟁)을 명분으로, 민간 기업에 토지 또는 현금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국가 우선순위(대륙 통합, 공급망 안보)를 달성하는 패턴이다.


1933뉴딜의 재발견, 시장이 아닌 국가가 가격을 정했다

1933년 루스벨트 행정부가 출범시킨 농업조정법(Agricultural Adjustment Act)은 미국 경제사에서 가장 파격적인 국가 개입 중 하나였다. 공급 과잉으로 폭락한 농산물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는 농민에게 돈을 주고 이미 심어 둔 목화를 갈아엎게 하고, 돼지를 도살해 시장에서 소각했다. 가격은 시장이 아니라 워싱턴 D.C.의 농무부가 결정했다.

농업조정법은 1936년 1월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농업 보조금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후속 입법을 통해 이어진 지원 체계 덕분에, 대두·옥수수·밀을 재배하는 중서부 농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보조금을 받는 농민 집단 중 하나가 됐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장에서 다른 국가의 농업보조금 철폐를 요구해왔다. 원칙과 실제의 간극이 이보다 더 선명할 수 없다.

뉴딜이 남긴 더 중요한 유산은 제도 설계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증권거래위원회(SEC), 사회보장청(SSA). 이 기관들은 시장을 억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이 자멸하지 않도록 떠받치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재의 제도적 틀 안에서 미국 자본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1930년대 국가 개입이 그 토대를 닦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무엇이 다른가

CHIPS Act와 IRA로 대표되는 2020년대 산업정책은 이전 세대의 국가 개입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과거의 개입은 주로 시장 실패(대공황, 금융위기)나 안보 비상사태(세계대전, 냉전)에 대한 사후 대응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기후변화, 공급망 재편이라는 복합 압박 앞에서 미국은 사후 처방 대신 사전 설계로 전략을 바꿨다. 국가가 시장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가야 할 방향 자체를 설정하는 것이다.

달라진 것은 지형이기도 하다. 19세기 철도 보조금은 지리적 공백을 채우는 작업이었다. 시장이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한 노선에 국가가 들어갔다. 지금의 반도체 보조금은 수익성이 충분한 산업에, 이미 글로벌 공급망을 갖춘 기업들에게 추가 자금을 투입하는 구조다. 인텔, TSMC, 삼성전자가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은 순수 시장 논리로도 가능했을 일이다. 국가가 비용의 일부를 떠안음으로써, 민간의 리스크를 낮추는 동시에 지정학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다. 이 구조에서 납세자는 리스크를 분담하지만 이윤은 나눠 갖지 않는다.


앞으로 가능한 시나리오

미국이 현재의 산업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동맹국과의 공급망 재편에 성공할 경우, 반도체·배터리·청정에너지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가 낮아지고 제조업 부가가치의 미국 내 비율이 2020년 약 11%에서 2030년대 초 15% 이상으로 회복될 수 있다. 이 경로가 실현되려면 보조금 수혜 기업들이 약속한 생산 목표를 달성해야 하고, 우방국과의 기술 공유 협약이 WTO 규범과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

행정부가 교체되거나 재정 압박이 심화될 경우, 보조금 프로그램이 축소되면서 기업들의 투자 계획이 불확실성에 빠질 수 있다. 미국 연방 부채가 2025년 기준 GDP 대비 약 122%에 달하는 상황에서, 의회가 산업보조금보다 재정건전화를 우선할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다. 이 경우 유치가 확정됐던 공장 건설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반쪽짜리 산업정책으로 귀결될 수 있다.

미국의 보조금 경쟁을 유럽연합과 중국이 더 강도 높은 대응으로 맞받아칠 경우, 보조금 전쟁이 전면화된다. 세계무역기구 분쟁 해결 기능은 이미 2019년 이후 상소기구 위원 임명 거부로 사실상 마비 상태다. 규범의 공백 속에서 각국이 경쟁적으로 보조금을 쌓아 올리는 구도, 이른바 '보조금을 향한 경주'가 펼쳐질 수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 수혜자는 대형 제조 기업이고, 비용은 분산된 납세자들이 나눠 부담한다.


독자가 기억해야 할 한 문장

미국 연방정부의 특정 산업 보조금 총액이 GDP 대비 1%를 지속적으로 넘어서고, 동시에 해당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가 보조금 수령액을 초과할 때, 그 산업정책은 국가 전략이 아니라 이윤의 사회화로 전락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어야 한다.


참고자료

IMF Working Paper — Industrial Policy for Growth and Diversification (2023)

U.S. Congress — CHIPS and Science Act, H.R. 4346 (117th Congress)

NBER — Hamilton's Report on Manufactures and American Industrial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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