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장면
2026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Saudi Aramco)의 헬리콥터가 추락했다. 같은 주, 미국과 이란은 연일 공격과 반격을 주고받았다. 뉴욕 증시에서는 AI 수요를 타고 기업공개(IPO)에 나서는 기업들이 줄을 이었고, 일본 정부는 '기초방침(骨太方針)'에 통화정책 관련 새 문구를 끼워 넣었다. 서울의 기온은 6월 기준 역대 최고를 기록 중이다. 지구 위의 돈과 권력은, 늘 그랬듯, 두 힘 사이를 오간다. 지정학적 긴장과 기술 낙관론.
1973제1차 오일쇼크를 설계한 두 인물: 야마니와 키신저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하면서 제4차 중동전쟁이 시작됐다. 열흘 뒤인 10월 16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걸프 회원국들은 원유 공시가격을 배럴당 3.01달러에서 5.12달러로 70% 가까이 올렸다. 그리고 10월 20일, 아랍 산유국들은 미국에 대한 원유 수출 금수를 선언했다. 이 연쇄 결정의 중심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장관 셰이크 아흐마드 자키 야마니(Sheikh Ahmed Zaki Yamani)는 당시 43세였다. 하버드 법학대학원 출신의 테크노크라트였던 그는 금수 조치를 전면 지지하면서도 그것을 협상 카드로 운용하는 데 능했다. 반면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는 같은 위기를 전혀 다른 각도로 읽었다. 그는 금수 자체보다 유럽과 일본이 아랍권과 개별 협상에 나서는 상황을 더 위협적으로 봤다. 서방 동맹의 균열이 진짜 위험이었다.
역사에서 자주 간과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야마니는 금수 조치를 일찌감치 해제하고 싶어했다. 그는 고유가가 서방의 대체에너지 개발을 자극해 결국 산유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알았다. 실제로 그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1970년대 말 미국의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가동, 북해 유전 개발, 핵발전 확대는 모두 1973년 충격의 직접적 산물이었다. 두 사람은 적이었으나 같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에너지를 무기로 쓰는 순간, 그 날카로움은 무뎌지기 시작한다.
2026아람코의 시대와 AI 붐의 설계자들
오늘의 아람코는 야마니의 아람코가 아니다. 2019년 기업공개(IPO)를 통해 상장된 사우디 아람코의 시가총액은 한때 2조 달러를 넘어 애플(Apple)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국제유가는 2022년 고점 대비 40% 이상 낮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헬리콥터 추락 사고는 기업 거버넌스와 안전 관리에 대한 물음표를 다시 띄웠다.
같은 시기, 뉴욕 증시에서는 AI 수요에 기댄 기업들의 IPO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2000년 닷컴 버블 당시 나스닥은 정점에서 불과 2년 만에 78%가 증발했다. 2026년의 AI 붐이 그 구조와 같은지 다른지는 수익성 데이터를 보면 어느 정도 가늠된다. 2000년 IPO 기업들 중 상당수는 매출 자체가 없었다. 지금의 AI 인프라 기업들 중 다수는 실제 매출과 영업이익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주가수익비율(PER,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시장이 이익의 몇 배를 지불하는지 보여주는 지표)이 100배를 넘는 종목들이 다시 줄을 서고 있다는 점은 가볍게 볼 수 없다.
이 구조의 한쪽에는 젠슨 황(Jensen Huang)과 그가 이끄는 엔비디아(Nvidia)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이를 사들이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아마존(Amazon), 구글(Google)의 설비투자 결정권자들이 있다. 야마니와 키신저가 에너지 지도를 다시 그렸듯, 오늘의 AI 설계자들은 자본 배분의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이번에는 무엇이 다른가
1973년의 위기는 공급 충격이었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미국 소비자물가는 1974년 한 해에만 큰 폭으로 뛰었고, 이는 1970년대 내내 이어진 인플레이션 압력의 출발점이 됐다. 오늘의 긴장은 그보다 복합적이다. 미국과 이란 사이의 군사적 응수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 흐름에 물리적 위협이 되지만, 전 세계 전략 비축유(Strategic Petroleum Reserve) 수준과 셰일 생산 여력은 1973년과 비교할 수 없이 두텁다.
결정적 차이는 여기에 있다. 1973년에는 에너지가 곧 거시경제였다. 2026년에는 에너지와 AI 인프라가 동시에 거시경제를 이끌고 있다. 일본이 기초방침에 통화정책 관련 문구를 새로 쓴 것도 이 복합 구조 위에서 읽어야 한다. 일본은행(Bank of Japan)의 금리 정상화가 엔화 강세로 이어지면 수출과 에너지 수입비용에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단일 변수로 움직이던 세계가 아니다.
Penseur의 판단
야마니는 무기를 쓰는 순간 그 설계도가 상대방에게도 넘어간다는 것을 알았다. 에너지를 지렛대로 쓸수록 대체재 개발은 빨라진다. AI 자본 집중도 같은 논리 위에 놓여 있다. 특정 칩 제조사와 클라우드 인프라에 대한 의존이 깊어질수록 국가와 기업들은 대안 경로를 찾기 시작한다. 지금 봐야 할 신호는 두 가지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넘어 석 달 이상 유지된다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경로가 다시 교란된다. 동시에 AI 인프라 기업들의 설비투자 대비 실제 매출 성장률이 2분기 연속 둔화된다면, 지금의 IPO 붐은 다른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봐야 한다.
참고자료
국제통화기금(IMF)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