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장면
2026년 6월, 에비앙레뱅의 호숫가 별장에서 G7 정상들이 모였다. 의제는 무역, 기후, 안보였지만 회의장 밖에서 더 오래된 질문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세계 상위 1%가 보유한 금융자산은 전체의 43%를 넘어섰고, 하위 50%의 몫은 2%에도 미치지 못한다. 불평등은 경제 성장의 부작용이 아니라 성장 자체의 구조적 조건이 됐다. G7은 이 구조를 바로잡았는가, 아니면 그 위에 앉아 있는가.
1890년대도금 시대의 카르텔과 금융 집중
1890년 미국에서 셔먼 반독점법이 통과됐을 때, 상위 1%가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이미 18%에 육박하고 있었다.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 석유 정제 시장의 91%를 장악했고, JP모건은 철도·철강·전기 회사들을 엮어 미국 산업 자본의 심장부를 틀어쥐었다. 당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 집중을 효율성의 증거로 읽었다. 규모의 경제가 국민 전체를 이롭게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1890년대 미국 농가의 실질소득은 남북전쟁 이후 30년간 거의 오르지 않았다. 철도 운임이 담합으로 고정된 탓에 중서부 농민들은 밀을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에 갇혔다. 이 구조적 억압이 포퓰리즘 운동을 낳았고, 1896년 대선에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의 '황금 십자가' 연설로 터져 나왔다. 불평등은 정치 지형을 바꾸는 원인이었지, 결과가 아니었다.
오늘의 에비앙 회의와 구조적으로 겹치는 지점은 여기다. 금융 자본의 집중이 정치 의제를 형성하고, 그 의제를 논의하는 자리에 자본이 다시 앉는 순환. G7 정상들의 공식 만찬 비용을 1인당으로 환산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노동자의 연간 소득을 초과한다.
1944년브레턴우즈의 설계와 배제된 남반구
1944년 7월,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 호텔에서 44개국 대표들이 전후 국제 금융 질서를 설계했다. IMF와 세계은행의 탄생이다. 케인스는 채권국과 채무국 모두에 조정 의무를 부과하는 '방코르(Bancor)' 체제를 제안했다. 영국의 제안은 부결됐고, 미국 달러 중심의 고정환율제가 채택됐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사실이 있다. 44개국 중 아프리카 국가는 남아프리카연방 단 한 곳뿐이었다. 아시아 독립국의 대표권도 극히 제한됐다. 세계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이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처음부터 배제됐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투표권 배분 구조는 80년이 지난 지금도 G7 국가들이 IMF 총투표권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에비앙 회의는 브레턴우즈의 후예다. 형식은 다자주의이되, 의사결정은 여전히 소수의 부유한 국가들이 독점한다. 불평등을 '공동의 도전'으로 선언하는 코뮈니케를 작성하는 손은, 그 불평등 구조에서 가장 큰 수혜를 누려온 손이다.
1971년닉슨 쇼크와 자본 이동의 자유화
1971년 8월 15일 일요일 저녁, 리처드 닉슨은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달러의 금 태환 정지를 선언했다. 이른바 '닉슨 쇼크'다. 이 결정은 단순한 환율 정책 변화가 아니었다. 자본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는 시대의 서막이었다.
1973년 브레턴우즈 고정환율제가 완전히 붕괴된 이후 각국은 자본 계정을 순차적으로 개방했다. 그 결과는 수치로 분명히 드러난다. OECD 분석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20년까지 금융 자유화가 진행된 국가에서 상위 10%의 소득 점유율은 평균 3.5%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하위 40%의 점유율은 오히려 낮아졌다. 자본은 세금과 규제가 낮은 곳으로 이동했고, 노동은 그러지 못했다.
1971년의 결정이 만들어낸 구조는 지금 에비앙 회의가 '해결하겠다'고 선언하는 불평등의 뼈대 자체다. 오프쇼어 금융센터를 통한 세금 회피 규모는 연간 5,0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 돈은 G7 국가들의 공교육과 사회보험 예산에서 빠져나가 케이맨 제도와 룩셈부르크의 계좌로 흘러든다.
이번에는 무엇이 다른가
세 시대의 불평등은 모두 금융 권력의 집중을 핵심 동력으로 삼았다. 그러나 2026년의 불평등에는 이전과 다른 속도가 있다. 인공지능이 자본 수익률을 노동 임금 상승률보다 훨씬 빠르게 끌어올리는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1890년대 도금 시대에는 철도와 석유라는 물리적 인프라가 집중의 매개였다. 지금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이 자산은 특허와 독점 계약으로 보호받아 재분배가 훨씬 어렵다. 과거에는 반독점 정책으로 기업을 해산하면 독점이 풀렸지만, 오늘의 알고리즘 독점은 지식재산권의 형태로 분해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차이는 측정 가능성이다. 1944년 브레턴우즈 회의 당시에는 글로벌 자산 분배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단이 없었다. 지금은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uality Lab)가 100개국 이상의 데이터를 축적해 수치를 공개한다. 불평등이 통계로 증명되는 시대에, G7이 이를 '증상'이 아닌 '원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선택이다.
Penseur의 판단
에비앙 회의가 불평등을 의제에 올리는 것과 구조를 바꾸는 것은 다른 일이다. 1890년대 셔먼법은 통과됐지만 실제 집행은 20년을 기다려야 했다. 브레턴우즈는 설계됐지만 수십억 인구를 배제한 채 작동했다. 1971년 이후의 자본 자유화는 불평등을 심화시키면서도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됐다. 공동선언문의 언어가 아니라 최저 글로벌 법인세 실효세율의 집행 여부, 다자개발은행의 저소득국 채권 재편 의지, IMF 투표권 재배분 협상의 진전 여부를 보라.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구체적 수치와 일정표 없이 코뮈니케에서 빠진다면, 에비앙 2026은 화려한 장식 속의 공회전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