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경제 오측: 두 노벨상의 눈에 없는 것

유럽경제 오측: 두 노벨상의 눈에 없는 것
유럽의 거대한 유산은 GDP 수치 어디에도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나

2024년 기준 미국의 1인당 GDP는 유럽연합 평균보다 약 40% 높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과 필리프 아기옹은 각각 다른 잣대로 이 격차를 설명하려 했지만, 두 사람 모두 같은 것을 놓쳤다. 유럽이 수세기에 걸쳐 쌓아 올린 자산, 즉 건물·인프라·문화재·토지·금융 스톡이 생산성 지표 어디에도 포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무슨 의미인가

먼저 논쟁의 핵심 지표부터 짚어 보자. GDP(국내총생산)는 한 해 동안 한 나라 안에서 새로 만들어진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 합계다. 핵심은 '새로'라는 단어에 있다. 100년 전 지어진 파리의 아파트 건물은, 오늘 임대료를 받더라도 GDP 집계에는 임대소득으로만 잡힐 뿐, 건물 자체의 자산 가치는 포함되지 않는다.

크루그먼은 유럽인이 미국인보다 여가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노동시간이 짧고, 그것이 GDP 격차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아기옹은 혁신과 기술 추격 구조에서 유럽의 산업 정책이 실패했다는 쪽에 무게를 둔다. 두 주장 모두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두 사람이 공유하는 맹점이 있다. 스톡(stock), 즉 축적된 부의 규모를 논의에서 빠뜨린다는 점이다.

스톡과 플로(flow)의 차이는 은행 계좌로 비유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플로는 한 달 월급처럼 들어오고 나가는 돈의 흐름이고, 스톡은 통장 잔액 전체다. GDP는 플로를 잰다. 유럽의 문제는 통장 잔액(스톡)은 두둑하지만 매달 버는 돈(플로)이 줄고 있다는 데 있다.


어떻게 작동하는가

유럽의 자산 규모는 얼마나 될까. 유럽중앙은행(ECB)이 2023년 발표한 가계 자산 조사(Household Finance and Consumption Survey)에 따르면, 유로존 가계의 중위 순자산은 약 17만 2,000유로로 미국(약 19만 2,000달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수치는 부동산 자산 비중이 높은 유럽의 특성을 이미 반영한 결과다. 유럽 주요국의 부동산 자산은 GDP 대비 300~400% 수준으로, 미국의 약 150%와 비교하면 두 배를 넘는다.

더 긴 역사적 시야로 보면 이 구조는 낯설지 않다. 1870년대 영국 경제학자 레오 치오차 머니는 영국의 국부를 집계하면서 건물·농지·식민지 인프라 같은 실물 스톡이 당해 연도 국민소득의 10배를 넘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 격차가 영국 경제의 강점인 동시에, 자산을 새로운 투자로 전환하지 못할 경우 침체의 씨앗이 된다고 경고했다. 19세기 영국의 그 경고는 20세기 초 미국에 제조업 패권을 내준 영국의 쇠락과 포개진다.

오늘의 유럽도 비슷한 구조적 기로에 서 있다. 2023년 OECD 자료를 보면 유럽연합의 연구개발(R&D) 지출은 GDP 대비 평균 2.2%로, 미국의 3.5%에 못 미친다. 축적된 자산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전환하는 속도가 느리다는 의미다.

"부는 물려받을 수 있지만, 성장은 물려받을 수 없다." 이 단순한 명제가 유럽의 두 노벨상 수상자가 함께 놓친 핵심이다.

대부분이 오해하는 것

유럽이 미국보다 가난하다는 인식은 절반만 맞다. 측정 기준에 따라 결론이 완전히 달라진다. GDP 기준으로는 미국이 앞서지만, 일부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국민대차대조표(National Balance Sheet)' 기준으로는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의 순자산 총액이 미국에 크게 뒤지지 않거나 오히려 앞서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 자산이 새로운 혁신과 생산성 향상으로 재투자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은 거대한 유산을 손에 쥔 채 그것을 어디에 써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독자가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유럽의 R&D 지출 비율이 GDP 대비 3%를 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고령화로 자산 매각 속도까지 빨라지는 조짐이 보인다면, 그때를 유럽 자산 스톡의 실질적 침식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읽어야 한다.


참고자료

유럽중앙은행(ECB) — Household Finance and Consumption Survey (2023)

OECD — Main Science and Technology Indicators (R&D 지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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