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장면
2026년 6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인공지능·반도체·방위·우주·조선을 핵심 축으로 삼은 장기 경제 개발 비전을 발표했다. 총 투자 규모는 2.3조 달러(약 330조 엔). 일본 GDP의 약 60%에 해당하는 이 숫자가 국가 주도 산업 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제시된 것이다. 시장이 아니라 정부가 미래 산업의 지형을 그리겠다는 선언이었다.
1960년대일본 통산성, 패전국에서 수출 강국을 설계하다
1962년, 일본 통상산업성(MITI)은 '산업구조의 고도화' 지침을 통해 철강·석유화학·기계를 전략 산업으로 지목하고 금융·세제 혜택을 집중했다. 이 시기 일본의 제조업 수출은 연평균 15% 이상 성장했고, 1968년 일본은 서독을 제치고 자본주의 진영 2위 경제대국이 되었다. 흔히 이 성공을 '저임금 노동력' 덕분으로만 설명하지만, 핵심은 MITI가 민간 기업의 투자 방향을 직접 조율하고 부실 기업의 퇴장을 관리한 관치금융 체계였다.
당시 MITI의 전략 산업 선정 기준은 세 가지였다. 수요의 소득 탄력성이 높을 것, 기술 집약도가 높아 학습 효과가 클 것, 수출로 외화를 벌 수 있을 것. 오늘 다카이치 정부가 AI·반도체·방위를 선택한 논리와 구조적으로 같다. 수십 년이 지나도 국가가 산업을 선별하는 기준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성공에는 그늘이 있었다. MITI의 보호 아래 성장한 기업들은 1980년대 이후 시장 자율화 압력에 적응하는 속도가 느렸고, 일부 산업은 과잉 설비와 만성 적자를 안고도 퇴출되지 않는 좀비 구조를 형성했다. 국가 설계의 성공은 언제나 그 설계가 끝난 이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1950년대프랑스 계획경제, 폐허에서 30년의 영광을 만들다
1946년 장 모네가 설계한 프랑스 경제 근대화 계획(Plan Monnet)은 철강·전력·시멘트·석탄·교통 다섯 부문에 국가 자원을 집중 투입했다. 이후 1970년대 초까지 프랑스는 연평균 5%대 성장을 유지했고, 이 시기를 프랑스인들은 '영광의 30년(Les Trente Glorieuses)'이라 부른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모네 계획이 단순한 재정 투입이 아니라 국가가 금융 기관의 신용 배분을 직접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는 점이다. 프랑스 정부는 전략 산업 기업에 우선적으로 대출을 배정하고, 비전략 부문의 자금 접근을 행정적으로 제한했다.
다카이치 플랜이 추진하는 반도체 투자 지원은 이 구조와 닮아 있다. 일본 정부는 이미 TSMC 구마모토 공장(총 투자액 약 86억 달러, 이 중 정부 보조금 약 34억 달러)에 국고를 직접 투입한 전례를 만들었다. 이번 2.3조 달러 플랜은 그 선례를 장기 제도화하는 수순이다.
프랑스의 경험이 주는 경고는 다른 곳에 있다. 영광의 30년이 끝난 것은 외부 충격(1973년 오일쇼크) 때문이 아니라, 계획 경제 체제가 민간의 혁신 유인을 서서히 잠식한 결과였다. 국가가 정한 우선순위 밖의 산업은 금융 접근이 막혔고, 기업가 정신은 행정 로비로 대체되었다.
1980년대레이건의 역설, 반시장이 된 방위 산업 보조금
1980년대 미국 레이건 행정부는 '작은 정부'를 표방하면서도 방위 예산을 1980년 GDP 대비 4.9%에서 1986년 6.2%로 끌어올렸다. 절대 금액으로는 5년 만에 실질 기준 70% 이상 늘어난 규모였다. 이 자금은 반도체·항공우주·통신 분야 기업에 국방부 계약 형태로 흘러들었고, 인텔·록히드·보잉의 기술 기반을 사실상 국가가 떠받쳤다.
자유 시장을 설파한 행정부가 실리콘밸리의 첫 번째 큰손 고객이었다는 사실은, 국가 산업 정책이 항상 그 이름을 달고 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카이치 플랜이 방위를 AI·반도체와 함께 핵심 투자 축으로 묶은 것은 이 레이건 모델을 의식적으로 차용한 것에 가깝다. 방위 지출이 민간 첨단기술의 수요 기반을 만들고, 그 기술이 다시 수출 산업으로 전환되는 순환을 노리는 것이다. 일본 방위 예산은 2023년 GDP 대비 1%에서 2027년까지 2%로 확대하는 계획이 이미 확정된 상태다. 이번 장기 플랜은 그 위에 민간 AI·반도체 투자를 얹는 구조다.
그러나 레이건 모델에서 흔히 간과되는 점이 있다. 방위 계약 중심의 기술 투자는 상업적 수요 검증 없이 기술을 키우기 때문에,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미국이 인터넷과 GPS를 군사 기술에서 민간 산업으로 전환하는 데 각각 20년 이상이 걸렸다.
이번에는 무엇이 다른가
세 사례 모두 국가가 금융 자원을 특정 산업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이번 일본 플랜과 닮았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다. 1960년대 MITI의 일본, 1950년대 모네 계획의 프랑스, 1980년대 레이건의 미국은 모두 인구가 늘거나 최소한 유지되는 조건에서 작동했다. 다카이치 플랜이 마주한 일본은 2025년 현재 합계출산율 1.20으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이미 1995년 대비 약 1,000만 명 줄었고 2040년까지 700만 명이 추가로 감소할 전망이다.
국가 주도 산업 정책의 역사적 성공 사례들은 대체로 만들 사람이 있는 곳에서 나왔다. AI·반도체 투자가 자동화를 통해 이 인구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지, 아니면 자동화의 과실이 자본에만 집중되어 내수 기반을 더 좁힐 것인지가 이번 플랜의 분기점이다. 역사에서 찾은 세 모델 중 어느 것도 이 변수를 시험한 적이 없다.
국가가 산업을 고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산업을 운영할 인구를 고를 수는 없다.
Penseur의 판단
2.3조 달러라는 숫자 자체보다 집행 경로가 중요하다. 일본 정부가 이 자금을 민간 기업의 투자를 유인하는 보조금·세액공제 형태로 투입하느냐, 아니면 국책 금융기관을 통한 직접 대출로 배분하느냐에 따라 혁신의 밀도가 달라진다. 역사적으로 전자는 선정 기준의 정치화를 낳았고, 후자는 좀비 기업 문제를 낳았다. 일본 국채 금리가 2% 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동안은 재정 여력이 있지만, 10년물 금리가 3%를 넘기 시작하면 이 플랜의 지속 가능성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