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일본 은행 대출, 코로나 이후 최고 증가율

2024년 일본 은행 대출, 코로나 이후 최고 증가율
도쿄 니혼바시에 위치한 일본은행 본점. 수십 년간 제로금리를 고수해 온 이 건물에서 역사적인 통화정책 전환이 시작됐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나

2026년 현재, 일본의 은행 대출 증가율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신용 공급이 여전히 원활하다는 신호로 읽히며, 일본은행(BOJ)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릴 여지가 생겼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수십 년간 제로금리와 마이너스금리 정책을 고수해 온 나라에서 대출이 이렇게 빠르게 늘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경기 지표 하나가 아니라 일본 금융 구조 전체의 변곡점을 알리는 신호다.


숫자로 보면 무엇이 중요한가

일본의 은행 대출 잔액은 2024년 말 기준으로 전년 대비 약 3% 후반대 증가를 기록했다. 이는 팬데믹 직후인 2020~2021년 기업들이 긴급 유동성을 확보하던 시기 이래 가장 빠른 속도다. 당시는 정부 보증 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었던 비정상적 국면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정책적 강제 없이도 대출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더 중요한 수치는 실질금리다. 일본은행은 2024년 3월 마이너스금리를 종료하고 2024년 7월과 2025년 초에 추가 인상을 단행해 정책금리를 0.5%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대를 유지하고 있어 실질금리(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값)는 여전히 마이너스 영역에 머문다. 돈을 빌릴수록 실질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가 지속되는 셈이다.

통념과 반대되는 수치가 하나 있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 수요가 줄어야 한다는 것이 교과서적 논리지만, 일본에서는 금리 인상 이후 오히려 대출이 늘었다. 기업들이 금리 상승 전에 자금을 확보하려는 선제적 움직임과 함께, 엔화 약세로 수출 기업의 자금 수요가 증가한 구조적 요인이 겹쳤기 때문이다. GDP 대비 민간 신용 비율은 여전히 100%를 웃도는 수준으로, 일본 기업과 가계가 은행 차입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보여준다.


1990년대의 거울: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이 걸어온 길

1990일본의 자산 버블이 붕괴한 1990년대 초, 은행 대출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무너졌다.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폭락하면서 담보 가치가 사라졌고, 은행들은 새로운 대출 대신 부실채권 처리에 몰두했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당시 일본 주요 시중은행들이 공식적으로는 건전한 것처럼 보고하면서 실제로는 이른바 '좀비 기업'에 대한 대출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손실을 은폐했다는 점이다. 이 관행은 1990년대 내내 지속되었고, 경제학자 리카르도 카발레로와 아닐 카시야프, 데이비드 샤르프스타인이 2008년 연구에서 '좀비 대출(zombie lending)'로 명명한 현상의 전형이 됐다.

이후 일본은행은 2001년 세계 최초로 양적완화(중앙은행이 국채 등을 대규모로 매입해 시중에 돈을 푸는 정책)를 도입했고, 2016년에는 단기금리를 마이너스 0.1%로 낮췄다. 그럼에도 은행 대출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기업들이 미래를 확신하지 못한 채 투자보다 현금 보유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경제학자들은 '밸런스시트 불황(기업과 가계가 부채 축소에 집중하느라 소비와 투자를 줄이는 상태)'으로 부른다.

오늘의 대출 증가는 바로 그 30년의 침체에서 벗어나는 신호로 읽힌다. 기업들이 다시 미래에 돈을 걸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구조적 공통점도 분명하다. 당시와 지금 모두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전환이 민간 신용 흐름의 분기점이 됐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무엇이 다른가

1990년대 버블 붕괴 직전에도 은행 대출은 빠르게 늘었다. 1988~1989년 일본 시중은행의 대출 증가율은 연 10%를 넘었고, 그 상당 부분이 부동산 담보 투기성 대출이었다. 지금의 대출 증가는 그 시기와 겉모습이 비슷하지만 속은 다르다. 현재 일본 부동산 가격은 일부 도시권에서 상승세를 보이나, 1980년대 말처럼 GDP 대비 시가총액이 극단적으로 과열됐던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결정적 차이는 인구구조와 임금이다. 1990년대 일본은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정점을 막 지난 시기였고, 실질임금은 정체하거나 하락했다. 지금은 극심한 인력난으로 임금이 실제로 오르고 있다. 2024년 일본의 춘투(봄 임금 협상)에서 대기업 임금 인상률은 5.28%로, 3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임금이 오르면 가계의 원리금 상환 여력이 생기고, 이는 대출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앞으로 가능한 시나리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연착륙이다. 임금 상승과 내수 회복이 맞물려 기업 투자가 늘고, 은행 대출은 생산적 용도로 흘러든다. 이 경우 일본은행은 2026년 말까지 정책금리를 0.75~1.0%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올릴 수 있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려면 실질임금 상승이 2년 이상 지속되어야 한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정체다. 엔화 강세로 수출 기업의 수익이 꺾이거나, 미국 경기 둔화로 글로벌 수요가 위축될 경우, 기업들은 대출 확대를 멈추고 다시 방어적 자세로 돌아선다. 이 경우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경로는 중단되고 2026년 하반기 이후 인상 횟수가 한 차례 이하로 줄어들 공산이 크다. 엔·달러 환율이 130엔 아래로 빠르게 내려올 때가 이 경로의 신호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과열 후 조정이다. 부동산과 주식에 대출이 집중될 경우, 일본은행이 금리를 예상보다 빠르게 올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급격한 금리 인상은 부채가 과도한 기업과 가계에 충격을 준다. 도쿄권 주거용 부동산 가격이 2019년 대비 50% 이상 오른 상태에서 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을 때 이 시나리오를 경계해야 한다.


독자가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일본 은행 대출의 증가가 임금 상승과 함께 움직이는 한 긍정적 신호지만, 대출 증가율이 실질 GDP 성장률을 2년 연속 두 배 이상 초과하는 시점이 온다면 1980년대 말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따져야 한다.


참고자료

일본은행(BOJ) — 은행 대출 통계

국제통화기금(IMF) —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

OECD — 일본 경제 현황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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