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회계 8화 — 실크로드를 설계한 나라

거래 명세서와 실제 도착한 물건이 다를 때, 가장 먼저 아는 사람은 창고 직원이다. 숫자는 맞는데 품목이 바뀌어 있거나 수량이 모자란 것을 발견하는 것은 서류를 검토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자를 직접 여는 사람이다. 제국의 재정도 다르지 않았다. 장부에 기록된 수입과 실제 도착한 돈 사이에는 언제나 설명되지 않는 거리가 있었고, 그 거리를 먼저 체감하는 쪽은 황제가 아니라 꾸러미를 손으로 묶는 사람이었다.

기원전 119년 가을, 장안 서쪽 옥문관이 열리기 한 시간 전. 진묵이라는 서른두 살 하급 관리는 낙타 등에 비단 꾸러미를 묶으면서 손가락이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새벽 바람이 황토 먼지를 몰고 왔고, 낙타의 숨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꾸러미마다 황실 인장이 붉은 칠로 찍혀 있었고, 안에는 대월지와의 교역 계약서와 비단 원단이 층층이 들어 있었다. 짐이 한 근이라도 더 실리면 낙타가 먼저 쓰러지고, 계약서는 사막에 묻힌다. 그 계산을 진묵은 밤새 되풀이하다가 뜬눈으로 날을 밝혔다.

황실이 비단을 서쪽으로 보내는 이유를 진묵은 동료들보다 먼저 이해하고 있었다. 흉노와의 전쟁이 한나라 국고를 매년 갉아먹고 있었고, 무제는 북쪽 유목민을 꺾기 위해 서쪽 오아시스 국가들과의 동맹이 필요했다. 낙타 털 냄새가 코를 찔렀고, 관문 너머의 사막은 아직 어두웠다. 그 동맹의 언어가 금이 아니라 비단이었다. 그는 자신이 역사의 설계도를 낙타 등에 싣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무제가 즉위한 기원전 141년, 한나라의 재정은 표면적으로 건강했다. 문제와 경제 시절 육십 년간 이어진 문경의 치가 창고를 가득 채웠고, 《사기》는 당시 장안 창고의 곡식이 쌓여 썩어 넘칠 지경이었고 엽전 꾸러미의 끈이 삭아 더 이상 셀 수 없을 정도였다고 기록한다. 진나라가 단기간에 모든 것을 소진하며 사라진 것과 달리, 한나라는 절약과 농업 장려로 힘을 비축하며 숨을 고른 제국이었다. 황제가 검소하면 창고가 차고, 창고가 차면 전쟁을 감당할 수 있다는 이치가 반세기 넘게 지켜진 결과였다.

그러나 무제는 그 잉여를 서랍에 잠그지 않았다. 흉노 원정을 위해 매년 국고 수입의 절반 이상을 군사비로 쏟아부었고, 기원전 119년 단 한 번의 막북 대원정에 투입된 기병만 십만에 달했으며 별도의 보급용 말 십사만 필을 동원했다. 그 가운데 약 십만 필이 원정 과정에서 소진되었다. 그 한 번의 원정 비용으로 문경의 치가 쌓아올린 잉여의 상당 부분이 사라졌다. 창고가 얼마나 빠르게 비는지를 황제보다 먼저 알고 있던 관리들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가장 오래 침묵했다.

국고가 비자 무제는 세금 체계 자체를 뒤집었다. 소금과 철의 민간 생산을 금지하고 국가가 독점 공급하는 염철 제도를 기원전 119년에서 117년 사이에 단계적으로 도입했다. 지금으로 치면 정부가 제철소와 소금 공장을 일괄 국유화하고 민간 경쟁을 범죄로 규정한 것이었다. 진묵이 낙타에 비단을 싣던 그날 아침, 장안 성 안에서는 소금 밀수꾼 다섯 명이 처형장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제국은 바깥으로 팽창하면서 안으로는 조이고 있었다. 그 조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를 처음부터 설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크로드는 처음부터 설계된 무역로가 아니었다. 외교관 장건은 기원전 138년 대월지와 반흉노 동맹을 맺으러 서역으로 떠났다가 흉노에게 붙잡혀 십 년을 억류되었고, 열세 해 만에 장안으로 돌아왔다. 동맹은 실패했지만, 그는 서역의 지리와 산물에 관한 보고서를 품에 안고 왔다. 페르가나의 천리마, 대하의 포도주, 파르티아의 유리. 실패한 외교 임무가 뜻밖의 시장 조사서가 된 셈이었다. 서역이 한나라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장건 자신은 포로로 억류된 채 처음 알았다. 무제는 그 보고서에서 동맹 대신 거래를 읽었다. 한나라 비단이 서역에서 금과 같은 가치로 통용된다는 사실, 서역의 준마로 기병을 재편할 수 있다는 사실. 두 번째 사절단은 교환 임무로 꾸려졌다. 비단 대 말. 이것이 실크로드 최초의 거래 구조였다. 진묵이 낙타에 실은 꾸러미 속 비단은 결국 말과 맞바꿀 화폐였고, 그 말은 흉노를 향해 달릴 예정이었다.

한 해 뒤, 두 해 뒤, 열 해 뒤에도 비단이 계속 서쪽으로 흘러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계약서에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안으로 돌아오는 것은 말이었고, 말은 소모품이었다. 비단이 더 많이 나가야 더 많은 말이 들어왔고, 더 많은 말이 들어올수록 더 많은 전쟁이 가능했다. 만기 없는 계약이었다.

한나라는 교역로를 보호하기 위해 하서 회랑에 성을 쌓았다. 무위, 장액, 주천, 돈황으로 이어지는 네 개의 군현이었고, 군 하나를 운영하는 연간 비용은 비단 수만 필에 달했다. 변경 수비 병사들은 비단으로 급여를 받았고, 요새를 짓기 위해 끌려온 죄수들은 여름 뙤약볕 아래 황토를 다졌다. 진묵이 새벽에 손가락이 굳어가며 묶었던 그 꾸러미들과 같은 비단이, 이제 사막을 건너는 상인이 아니라 성벽을 쌓는 죄수들의 노역 대가로 지급되고 있었다. 변경에 군현이 하나 생길 때마다 내지의 납세자 한 사람이 지는 무게도 함께 커졌다. 요새는 교역을 보호했지만, 교역의 수익은 다시 요새 유지 비용으로 빠져나갔다. 지금으로 치면 고속도로 통행료가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구조였다. 소금 밀수꾼을 처형하고, 염철을 국유화하고, 변경에 성을 쌓는 것은 모두 같은 방향의 힘이었다. 이 구조를 처음 설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 구조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모두가 그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길이 넓어질수록 새어나가는 구멍도 함께 커졌다.


무제가 죽은 기원전 87년, 한나라는 겉으로 보면 승리한 제국이었다. 흉노는 북쪽으로 밀려났고, 서역 삼십육 국이 조공을 바쳤으며, 실크로드는 비단을 서쪽으로 실어 날랐다. 제국의 지도는 어느 때보다 넓었다. 그러나 그 구멍들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는 지도에 나오지 않았다.

무제 치세 오십여 년 동안 한나라 인구는 전쟁과 기근과 과세가 동시에 작동한 결과로 상당히 줄었다는 추산이 있다. 지도는 커졌고 사람은 줄었다. 관리들은 이 수치를 알고 있었다. 군현마다 호구 조사 기록이 정리되어 있었고, 세수 감소가 재정 담당자들에게 경보를 보냈다. 그러나 보고서는 황제에게 오르는 과정에서 희석되었다. 지방 관리는 인구 감소를 자신의 실정으로 읽힐까 두려워 붓을 들고 잠시 멈췄다가, 원래 숫자 위에 새 숫자를 덧씌웠다. 삭제가 아니었다. 덮어쓰기였다. 그렇게 수정된 숫자가 군에서 군으로, 도에서 도로 올라가면서 매번 조금씩 더 나은 수치가 되었다. 수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수치를 쓰는 손이 거짓말을 했다.

제국이 얼마나 멀리 뻗어나갔는지가 제국이 얼마나 빨리 비어가는지를 결정했다. 몰라서가 아니었다. 알아도 멈출 수 없는 구조였다. 구조가 알고 있는 사람까지 잠재웠다. 실크로드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의 방향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진묵은 끝내 대월지에 닿지 못했다. 사막에서 낙타 세 마리를 잃고 돌아왔고, 비단 꾸러미 열두 개 가운데 여덟 개만 장안으로 되돌아왔다. 나머지 네 개의 행방은 어떤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다. 그는 복명 보고서를 제출했고, 다음 달에 변방 수비대로 전출되었다. 그가 새벽에 손가락이 굳어가며 묶었던 것과 같은 꾸러미들이 그 뒤로도 수백 년 동안 옥문관을 빠져나갔고, 관문을 지키는 얼굴은 바뀌었지만 장부의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제국의 부를 유통시키는 길이 동시에 제국의 부를 소진시키는 길이었다는 것을, 그 길을 걸었던 누구도 한 문장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장부는 권력이 허락한 것만 기록한다. 허락되지 않은 것은 장부 밖에서 쌓였고, 장부 밖에서 쌓인 것들이 결국 제국을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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