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회계 20화 — 금이 돈이 아니었던 곳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물건이 항상 가장 유용한 물건은 아니다. 1519년 11월 8일 아침, 베르날 디아스는 테노치티틀란으로 이어지는 돌 둑길 위에서 발을 멈췄다. 카리브해의 섬들과 유카탄 반도의 밀림을 지나 열여덟 달을 걸어왔고, 발에는 굳은살이 박였으며, 갑옷 안에는 소금기 밴 땀이 말라붙어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소문보다 더 컸다. 호수 한가운데 섬 위에 세워진 도시, 수로를 따라 줄지어 움직이는 카누, 흰 석회암 신전의 꼭대기가 아침 햇살에 불타올랐다. 수십만 명이 만들어내는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르고, 바람이 숯 연기와 음식 냄새를 실어 왔다.

디아스의 손이 저절로 가슴에 얹혔다. 그는 경이로움과 탐욕 사이의 어딘가에 서서,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아직 몰랐다. 대시장 틀라텔롤코에 발을 들인 순간, 그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했다. 수만 명이 교환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금으로 거래하지 않았다. 짐꾼의 손에도, 상인의 허리춤에도 금은 없었다. 그 대신 갈색 콩이 손바닥을 오갔고, 접힌 천 뭉치가 짐 위에 올려졌다.

디아스는 옆에 선 통역을 잡아당겼다. 금은 어디 있느냐. 통역이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여기선 팔지 않습니다. 금은 신의 것입니다. 디아스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불이해가 훗날 두 문명의 운명을 갈랐다.


아즈텍의 화폐는 카카오 콩이었다. 틀라텔롤코 시장의 가격표는 명확했다. 카카오 콩 한 알이면 완전히 익은 아보카도 하나, 세 알이면 칠면조 알 하나, 서른 알이면 작은 토끼 한 마리, 백 알이면 칠면조 암컷 한 마리 혹은 노예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가치였다. 이 가격 체계는 제국 전역에 통용되었고, 시장 판사들이 저울과 부피 기준을 들고 시장을 순찰하며 거래를 감시했다. 카카오 콩이 화폐로 기능할 수 있었던 핵심은 공급의 지리적 제약에 있었다. 테오브로마 카카오 나무는 열대 저지대의 습기와 열기, 그늘과 특정한 강수량을 동시에 요구한다. 아즈텍의 심장부, 해발 2,000미터가 넘는 멕시코 계곡에서는 재배 자체가 불가능했다. 콩은 반드시 먼 곳에서 와야 했고, 그로 인해 공급량은 지형이 결정했다.

위조하기 어렵고, 단위로 쪼갤 수 있고, 누구나 값어치를 아는 물건. 황제 목테수마 2세의 창고에 약 9억 6천만 알에 이르는 카카오 콩이 쌓여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것은 사치품 비축이 아니었다. 화폐 준비금이었다. 콩이 습기에 썩거나 해충에 먹히면 제국의 교환 체계가 흔들리므로, 창고 관리인은 매일 아침 통풍구를 열고 콩의 냄새를 맡았다. 정복 이후 스페인 선교사 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이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훼손된 콩으로 흥정을 시도하다 걸리면 시장 밖으로 쫓겨났다. 화폐 위조를 막는 감시 체계가 이미 갖춰져 있었다.

카카오 콩이 소액 결제를 담당했다면, 더 큰 단위의 거래에는 퀘흐틀리, 즉 면직물 망토가 쓰였다. 망토 한 장은 등급에 따라 카카오 콩 65~100알과 등가였고, 직물의 품질에 따라 등급이 나뉘었다. 제국의 조공 장부 멘도사 문서에는 각 속주가 반년마다 수도로 납부해야 할 망토의 수량이 그림문자로 빽빽이 기록되어 있었다. 소치밀코 지역은 흰 망토 400장과 줄무늬 망토 400장을 납부해야 했고, 후아스테카 지역은 카카오 콩 800자루와 함께 망토 800장을 보내야 했다. 병사들은 망토로 급여를 받았고, 신전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은 망토를 받아 시장에서 음식으로 바꿨으며, 전쟁에서 사로잡은 포로의 몸값도 망토로 계산되었다. 망토는 접히고, 운반되고, 표준화된 품질 기준을 가졌다. 금은 그 어느 기능도 하지 못했다. 금은 태양신 토나티우의 빛이었다. 판매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디아스와 함께 시장을 걸은 코르테스의 병사 중 하나가 망토 한 장을 손에 들고 품질을 살펴보다 감독관에게 제지당하는 장면이 목격담에 남아 있다. 그 병사는 왜 자신이 제지당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날의 중앙은행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시장 판사들은 공식 등급에 따라 망토의 가격 범위를 관리했고, 임의의 흥정은 허락되지 않았다. 이 체계가 살아 있는 한, 시장은 돌아갔다. 그 살아 있음이 어디에 달려 있는지를, 병사도 디아스도 묻지 않았다.

안데스의 산비탈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의 경제가 움직이고 있었다. 잉카에는 화폐를 매개로 하는 공식 시장이 없었다. 서기 1500년 무렵, 쿠스코 동쪽 콜카 창고의 키푸카마요크 쿠이스페는 매듭을 엮고 있었다. 양손이 바빴다. 파란 실에 세 번의 매듭, 노란 실에 다섯 번의 매듭, 붉은 실에 두 겹의 꼬임. 그가 엮는 것은 장식품이 아니었다. 숫자였다. 안데스 전역 수백 개 창고의 재고를 기록하는 키푸, 매듭 문자였다. 저 아래 창고에는 동결건조된 감자 추뇨가 수십 층으로 쌓여 있었고, 건조 육포와 면직물과 구리 도구가 층층이 나뉘어 있었다. 해발 3,800미터의 냉건조한 공기가 냉장고 역할을 했다. 스페인 정복자 페드로 데 시에사 데 레온의 1540년대 기록에 따르면, 이 창고들에는 몇 년치 군량이 항상 비축되어 있었고 가뭄이 들어도 사람들은 굶지 않았다.

잉카의 경제 언어는 미타, 즉 노동 부채였다. 모든 성인 남성은 매년 국가에 일정 기간의 노동을 헌납해야 했다. 광산을 파고, 도로를 닦고, 신전과 궁전을 짓는 것이 세금이었다. 국가는 그 대가로 음식, 옷, 도구를 현물로 지급했다. 황금은 태양신 인티의 땀이었고, 은은 달의 눈물이었다. 숭배의 대상이지, 교환의 수단이 아니었다. 훗날 포토시 은광에서 캐낸 은이 태평양을 건너 명나라 창고로 흘러들 때에도, 그 은이 나오는 땅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은은 여기서 화폐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산의 일부였다.

쿠이스페는 자신의 세계가 그 산이 아니라 자신의 손에서 나온 매듭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매듭이 끊어지면 어떻게 되는지는, 아직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코르테스가 테노치티틀란을 포위한 1521년, 천연두는 이미 도시 인구의 3분의 1에서 절반을 죽인 뒤였다. 피사로가 황제 아타왈파를 사로잡은 1532년, 천연두가 안데스 인구에 이미 치명적 타격을 입힌 뒤였다. 전쟁은 붕괴를 완성했지만 시작하지 않았다. 전염병 다음으로 치명적이었던 것은 행정 체계의 파괴였다. 미타가 멈추자 콜카 창고는 비었다. 창고가 비자 고원의 농부들은 처음으로 스스로 식량을 구해야 했다. 시장이 없었던 곳에서 시장이 갑자기 필요해졌다. 쿠이스페 같은 키푸카마요크들이 처형되거나 도망치자, 어디에 창고가 있는지, 무엇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숫자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 숫자를 읽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아즈텍의 망토 경제도 같은 방식으로 무너졌다. 틀라텔롤코 시장을 순찰하던 시장 판사들이 흩어지자 가격 체계는 며칠을 버티지 못했다. 카카오 콩은 콩이 됐고, 망토는 천이 됐다. 유럽의 금화는 왕이 없어도 시장에서 기능한다. 그 뒤에 수백 년의 교환 관행과 불특정 다수의 신뢰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 콩은 시장 감독관이 사라지면 기능을 잃는다.

두 제국이 먼저 만들어낸 것은 교환의 도구가 아니라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이었고, 그 사람들이 사라졌을 때 교환의 도구도 함께 사라졌다. 그 붕괴는 몰라서 생긴 취약점이 아니었다. 그 위협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아무도 생각해본 적 없는 구조였다. 외부의 칼이 닿기 전에 스스로 대비할 이유가 없었던 것은, 그때까지 그 구조가 너무 잘 작동했기 때문이었다. 탁월함이 곧 취약함이었다.


디아스는 노년에 회고록을 쓰면서 틀라텔롤코 시장을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고 적었다. 그러나 그 시장이 어떤 원리로 작동했는지는 끝내 설명하지 못했다. 카카오 콩이 왜 금보다 쓸모 있었는지, 망토가 어떻게 임금이 되었는지, 미타가 어떻게 시장을 대신했는지는 그의 언어 바깥이었다. 그가 이해하지 못한 것들은 정복 이후 체계적으로 지워졌다. 시장 판사들의 가격표가 사라졌고, 쿠이스페의 후계자들이 사라졌으며, 콜카 창고의 관리 방식이 사라졌다. 한 세대 뒤, 안데스 산중에서 잉카의 후예들이 채찍 아래 캐낸 은이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흘러 들어가 16세기 물가혁명을 일으켰다. 포토시에서 쏟아진 은의 대량 유입이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이 혁명으로 유럽 전역의 물가는 한 세기에 걸쳐 세 배에서 네 배까지 치솟았고, 가격이 오르는 속도를 임금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대륙 전체가 흔들렸다. 금이 돈이 아니었던 땅에서 뽑아낸 은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리스본의 한 서기가 새벽 부두에서 처음 향신료 냄새를 맡던 그 아침에 이미 결정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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