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회계 22화 — 풍요의 저주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마음이 느슨해진다. 다음 달 월급도 들어올 테니 이번 달은 좀 써도 된다는 계산이 머릿속에서 소리 없이 작동한다. 이 계산은 개인에게만 작동하지 않는다. 국가도, 제국도, 은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동안에는 같은 방식으로 생각한다. 다음 달에도 올 테니까. 그 계산이 틀리는 순간, 남은 것은 습관이 아니라 구조다.

1545년 4월, 볼리비아 안데스 고원. 해발 4,000미터 세로 리코 산 기슭에서 디에고는 갱도 입구에 서서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손금이 검은 은 가루로 메워져 있었다. 사흘째 같은 자리였다. 냄새가 먼저였다. 수은 아말감으로 은을 제련하는 탓에 갱도 안에는 항상 금속 냄새와 달큰한 독기가 뒤섞여 떠돌았고, 그것이 코 안쪽에 쌓인 채 하루가 끝났다. 미타 제도, 지금으로 치면 국가 강제 징용이다. 그 제도에 묶인 잉카 후손 디에고에게 세로 리코는 선물이 아니었다. 하루 열 시간 이상 허리를 구부려야 하는 갱도였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다음 날 아침 채찍이 기다리는 곳이었다. 오래된 잉카 전설에 따르면, 이 산에서 은을 캐려 한 황제는 천둥 같은 목소리를 들었다. 이곳의 은은 너희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디에고는 손바닥의 은 가루를 털어냈다. 목소리가 스페인을 향한 것이었다.


세비야의 세관 관리 알론소는 1557년 봄, 보고서를 작성하다 손을 멈췄다. 카스티야 시장의 밀 가격이 10년 전보다 두 배였다. 올리브유는 세 배. 장인이 만든 구두 한 켤레로 살 수 있는 식량의 양은 아버지 세대의 절반이었다. 오류가 아니었다. 세비야 항구를 통해 쏟아져 들어온 은이 물가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화폐가 넘쳐날수록 화폐의 가치는 떨어진다. 경제사학자들이 훗날 가격혁명이라 이름 붙인 이 현상은 스페인에서 시작해 유럽 전체로 번졌다. 16세기 초부터 17세기 중반까지 150년에 걸쳐 유럽 물가는 평균 여섯 배 올랐다1). 연간 인플레이션율로 따지면 1~1.5퍼센트였다. 현대 기준으로는 낮아 보이지만, 물가가 오른다는 개념 자체가 없던 중세 유럽인들에게 이것은 세상의 법칙이 바뀌는 일이었다.

포토시 은광이 발견된 1545년, 스페인 왕실은 이 산을 세상의 보석함이라 불렀다. 1560년대에 세비야 항구로 연간 83톤씩 입항하던 은은 1590년대에 274톤으로 치솟았고, 16세기와 17세기를 합쳐 약 1만 7천 톤의 은이 신대륙에서 스페인으로 흘러들었다. 당시 세계 은 유통량의 절반을 넘는 숫자였다. 세비야 시내에서는 식료품 상인들이 탐욕스러운 자들로 찍혔고, 때로는 군중이 노점을 뒤집었다. 원인이 은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알론소 같은 왕실 서기들뿐이었다. 알론소는 보고서를 봉인하며 한 문장을 덧붙였다. 이 숫자들을 알아차린다 해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그런데 이 물가 폭등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물가가 오르자 스페인 상인이 만든 물건은 영국산·네덜란드산보다 비싸졌다. 은으로 외국 물건을 사들이는 편이 훨씬 쉬웠고, 식민지에서 물자를 뽑아 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살 사람이 줄자 공장은 문을 닫았다. 한 세기 전 포르투갈이 리스본 항구로 밀려드는 향신료 수입 속에서 조선소와 직물 공장을 닫았듯, 스페인도 은이라는 풍요가 오히려 내부를 갉아먹는 같은 경로를 걸었다.

16세기 말 스페인의 제조업 수출 비중은 세기 초에 비해 크게 줄었고, 국내 생산 기반이 안에서부터 허물어졌다. 그 빈자리를 외국산 물건과 외국인 은행가들이 채웠다. 카스티야 왕실 회계관 루이스 오르티스는 1558년, 왕실에 올린 보고서에서 스페인이 원자재를 수출하고 완성품을 수입하는 자리바꿈에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오르티스의 보고서는 서기들 사이에서 조용히 읽혔다. 왕에게는 닿지 않았다. 당장 갚아야 할 이자가 있었고, 당장 써야 할 은이 들어오고 있었으며, 당장 치러야 할 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론소의 손끝이 감지한 숫자와 제국의 의사결정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하나 서 있었다.

펠리페 2세는 1556년 즉위하던 해부터 아버지 카를로스 1세가 남긴 부채를 이어받았다. 알론소가 세비야 시장의 물가를 기록하던 그해, 왕은 첫 번째 국가 파산을 선언했다. 신대륙에서 은이 쏟아지는데 국고는 텅 빈 역설이었다. 네덜란드 독립 전쟁, 오스만과의 레판토 해전, 무적함대 건조. 무적함대 원정 하나에만 1,000만 두카트가 들었다. 포토시의 은이 세비야에 닿기도 전에 제노바 은행가들에게 이미 저당 잡혔고, 왕실은 세입의 30퍼센트 이상을 부채 상환에 쏟아부어야 했으며 단기 차입 이자도 10퍼센트를 웃돌았다. 카스티야 귀족과 성직자는 면세였고, 세금을 내는 쪽은 농민과 장인이었다. 그 물가 속에서 이들의 실질 소득은 줄었다.

부채를 메우려 왕실은 귀족 작위와 지방 자치권을 팔았는데, 이것이 오히려 세수 기반을 갉아먹었다. 한 세기 전 선왕들이 가톨릭 순혈 국가를 꿈꾸며 이베리아 반도에서 쫓아낸 유대인들은 스페인 금융과 상업의 핵심을 담당하던 사람들이었다. 그 자리에 들어온 이탈리아·독일 은행가들에게 스페인은 자국 은으로 자국 부채를 갚을 때마다 수수료를 냈다. 은이 스페인을 거쳐 유럽으로 흘러갔듯, 이자도 스페인을 거쳐 제노바로 흘러갔다. 카스티야 인구는 16세기 후반 약 530만 명이었다가 17세기 중반에는 상당히 줄었다. 전염병이 닥쳤고 사람들이 신대륙으로 떠났다. 떠나지 못한 자들 사이에서는 한 문장이 유행처럼 퍼졌다. 우리는 일하지 않고도 먹고살기를 원한다고. 은이 그 신념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안 제국은 버텼다. 은이 줄어드는 순간, 신념만 남았다.

재위 42년 동안 네 번 파산을 선언한 펠리페 2세는 비서에게 재정 서류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무능의 증거가 아니었다. 전쟁을 멈추면 동맹이 흔들렸고, 동맹이 흔들리면 속국의 복종은 느슨해졌다. 복종 없이는 세금이 없었고, 세금 없이는 다음 전쟁도 없었다. 제국이 크면 클수록 유지 비용은 더 컸고, 더 많은 은이 필요했다. 더 많은 은을 꺼내기 위해서는 세로 리코 갱도 안으로 더 많은 디에고가 걸어 들어가야 했다. 1588년 무적함대가 아일랜드·스코틀랜드 해안에서 폭풍에 흩어졌을 때, 알론소의 자리를 이어받은 서기들은 이미 무엇이 오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숫자를 기록하는 것뿐이었다.


스페인은 은이 너무 없어서 무너지지 않았다. 이 명백한 사실이 오히려 모든 것을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알론소 같은 서기들은 숫자를 보고 있었다. 오르티스는 핵심을 글로 남겼다. 왕실 재무 담당관들은 은의 유입 속도와 이자 상환 속도를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었다. 그들이 도달한 결론은 분명했다. 은을 더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론이 왜 실행 불가능한지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스페인의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제국은 돈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돈이 통과하는 곳이었다. 영국은 스페인이 사들인 물건을 팔아 자본을 쌓았고,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전쟁 비용을 조달하면서 금융 시스템을 다듬었다. 이탈리아 은행가들은 국채 이자를 받아 부를 불렸다. 은은 스페인에서 멈추지 않았다. 스페인은 파이프였다. 신대륙의 은을 유럽으로 이송하는 관로. 파이프 안으로 은이 지나가는 동안 파이프 벽은 얇아졌다.

파이프를 막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제국을 포기하는 것. 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왕은 없었다.


알론소의 아들은 아버지의 책상을 이어받아 같은 숫자들을 들여다보다가 1596년, 네 번째 파산 선언을 기록했다. 입항하는 은의 양, 전쟁 비용 청구서, 이자 상환 기록. 숫자들은 더 커졌지만 갈 곳은 아버지 때와 같았다. 보고서를 봉인하며 그는 잠시 창밖을 보았다. 과달키비르 강에 갈매기들이 낮게 날았다. 어딘가에서 디에고의 손자가 여전히 갱도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을 시간이었다. 손금 사이 은 가루를 털어내는 그 손이 멈추지 않는 한, 파이프는 계속 흘렀다. 다음 세기, 그 은의 일부는 비단과 도자기를 쫓아 더 먼 동쪽으로 흘러들어갈 것이었다. 사막의 대상로를 따라, 이란 고원을 가로질러. 거기서도 다른 제국이 은을 받았고, 다른 장부 위에서 그것을 잃었다.

주석

1) 인플레이션 연구에 따르면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통화량 증가·수요 충격·공급 충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설명되며, '150년간 여섯 배'라는 특정 수치를 직접 확인하는 데이터는 해당 발췌에 제시되어 있지 않다. (출처: Wikipedia: Inflation)

함께 읽으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