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회계 26화 — 처음으로 내일을 팔았다

국가가 당신에게 돈을 내라고 하면서 이자를 주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세금인가 투자인가. 지금은 둘 다라고 답할 수 있지만, 이 질문이 처음 던져진 날에는 아무도 답을 몰랐다. 현대 국가가 발행하는 국채, 공채, 재정증권의 가장 오래된 조상이 850년 전 베네치아의 운하 냄새 나는 골목에서 탄생했고, 그것을 처음 받아든 사람은 당황했다. 받은 것인지 빼앗긴 것인지, 그 경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1171년, 리알토 다리 근처의 좁은 골목에서 포목상 마르코는 손에 쥔 양피지를 세 번째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베네치아 대평의회가 그의 재산을 사정한 금액, 그에 따라 국고에 강제로 납입해야 할 액수. 거부할 수 없었다. 도제의 서명이 찍혀 있었다. 그런데 양피지 끝에 이상한 구절 하나가 덧붙어 있었다. 납입액에 대해 매년 5%의 이자를 지급한다. 반기마다 나눠서. 마르코는 양피지를 품 안에 접어 넣었다. 등 뒤에서 운하의 냄새가 났다. 썩은 수초와 소금이 뒤섞인 냄새. 세금인지 투자인지, 그는 아직 판단하지 못했다. 강제로 빼앗긴 것이었다. 아직은.

그 망설임이 오래 살아남았다. 마르코가 품 안에 접어 넣은 양피지 한 장이 수백 년 뒤 암스테르담의 은행가에게, 런던의 커피하우스 상인에게,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게 닿았다. 베네치아의 운하 옆에서는 이미 세계가 아직 이름도 붙이지 못한 무언가가 종이 위에서 효력을 얻고 있었다.


베네치아 도제 비탈레 미켈레 2세가 강제 대출을 도입한 것은 비잔티움 제국 원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도시 여섯 구역의 재산을 빠짐없이 사정하고, 구역별 부유층에게 재산 비율에 따라 금액을 배당했다. 세금이라 부르지 않았다. 공식 명칭은 프레스티티, 대출이었다. 당시 베네치아 인구에서 극소수를 차지하던 귀족 가문들이 이 대출의 주요 납입자였는데, 대평의회에 앉아 국가를 운영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국가에 돈을 빌려주는 꼴이었다.

결과는 재앙이었다. 함대는 전염병에 무너졌고, 포로로 잡힌 베네치아인들은 돌아오지 못했으며, 도제는 귀환 후 공개 의회에서 실책을 해명하던 중 군중이 들끓자 수도원으로 피신하다 단독 행동에 나선 한 베네치아인에게 골목에서 암살됐다. 채권자들의 분노가 들끓었다. 그들은 국가에 돈을 빌려줬고, 국가는 갚지 않았다. 그 분노가 쌓였다. 91년 뒤 원로원이 움직였다.

1262년, 베네치아 원로원은 한 세기 동안 여러 차례 발행된 서로 다른 채무를 단 하나의 기금으로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몬테 베키오, 옛 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럽에서 가장 이른 주권 채권 이차시장 중 하나였다. 그 안에서 프레스티티는 완전히 다른 물건으로 탈바꿈했다. 원금 상환 기한이 없는 영구 채권이고, 정부 장부에 채권자 이름이 등재되며, 제3자에게 자유롭게 양도할 수 있었다. 이자 지급을 관할하는 전담 관리직도 생겼다. 우피찰리 아이 프레스티티, 대출 관리관들은 취임할 때 채권자에게 이자를 정확히 지급하겠다는 선서를 해야 했다. 지금으로 치면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채 투자자 앞에서 지급 선서를 하는 셈이다.

이내 2차 시장이 열렸다. 리알토 광장에서 상인들은 채권을 사고팔았고, 귀족들은 딸의 지참금으로 프레스티티를 줬으며, 자선 재단은 기부받은 채권의 이자 수입으로 운영됐다. 마르코도 채권 일부를 아들에게 팔고 그 대금으로 새 포목을 들여왔다. 채권이 화폐처럼 유통되기 시작했다. 외국인이 프레스티티를 매입하려면 대평의회의 별도 허가가 필요했다. 채권은 이미 특권의 영역에 있었다. 첫 균열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1298년 9월, 제노바와의 해전에서 베네치아 함대가 쿠르촐라 앞바다에 격침됐다. 프레스티티 가격이 액면가의 60%까지 떨어졌고, 이듬해 기록된 실질 수익률이 8.375%로 치솟았다. 명목 이자율 5%짜리 채권이 8.375%짜리로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베네치아의 지급 능력을 절반 이하로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국가의 운명이 채권 가격표 위에 숫자로 적혔다. 그 숫자를 리알토 광장에서 읽고 있던 상인이라면, 지금 사야 할까 팔아야 할까. 그 판단이 맞든 틀리든, 더 큰 위기가 80년 뒤에 기다리고 있었다.

1378년은 베네치아 국채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해였다. 제노바와의 키오자 전쟁이 도시 외곽 해역까지 번지면서 전비 조달을 위해 대규모로 새 채권을 발행했다. 채권 잔액이 전쟁이 길어지면서 6배에서 9배 수준으로 불어나 총 부채가 470만 두카트에 달했다. 그리고 이자 지급이 중단됐다. 1379년부터 1381년까지, 수년에 걸쳐. 채권 가격은 액면가의 18%까지 무너졌다. 마르코의 손자, 중년 상인이 된 니콜로가 조부에게서 물려받은 채권을 쥐고 리알토 관청을 찾아왔다. 가을이 와도 창구는 닫혀 있었고, 이듬해 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창구 앞에서 기다리다 그냥 돌아섰다. 손에 쥔 채권은 가게 문 앞에서 빗물을 막는 문짝만도 못했다.

전쟁이 끝난 뒤 베네치아가 취한 행동이 다른 제국과의 결정적 차이를 만들었다. 채무를 부정하거나 채권자를 추방하는 대신, 1389년 정부는 채무 이행을 위한 별도 기금을 설치했다. 관세 수입의 일부를 자동으로 원금 상환에 배정하는 방식이었다. 어떤 세수가 어느 창구로 흘러가는지 채권자들이 장부를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신뢰는 천천히 돌아왔다. 1390년대에 채권 가격은 액면가의 60%대를 회복했다. 채무를 다 갚은 것이 아니었다. 갚겠다는 시스템을 투명하게 보여준 것만으로 충분했다.

15세기에도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오스만 제국과의 장기 분쟁으로 채무는 1428년 기준 900만 두카트까지 팽창했다. 몬테 베키오가 한계에 달하자 1482년 베네치아는 몬테 누오보, 새 산이라는 이름의 신규 채권 시리즈를 발행했다. 1509년 아냐델로 전투에서 프랑스군에 대패하자 곧바로 몬테 누오비시모, 가장 새로운 산이라는 세 번째 시리즈가 나왔다. 이름도 창의성도 바닥났지만 시장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빚이 늘수록 외국 자본이 베네치아로 몰렸다. 외국의 왕자들과 상인들이 대평의회에 허가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채권을 사게 해달라고. 피렌체의 상인이 베네치아 채권을 사고, 밀라노의 귀족이 이자 수입으로 생활했다. 강제로 거두던 것이 자발적으로 사려는 것이 됐다. 전쟁마다 채권이 발행됐고, 발행될 때마다 외국 자본이 줄을 섰다.

베네치아 채권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를 외국 상인들은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다. 피렌체 상인은 그 이유를 끝내 말로 설명하지 못했지만, 베네치아 채권을 손에 넣은 날 밤 잠을 잘 잤다고 한다.


피렌체 상인이 잠을 잘 잔 이유는 간단했다. 키오자 전쟁이 한창이던 동안 채권 가격이 액면가의 18%까지 무너졌을 때, 창구를 닫으라는 결정을 내린 것은 대평의회였다. 그 결정에 서명한 의원들 역시 프레스티티를 쥐고 있었다. 채권자와 입법자가 같은 사람이었다. 이자 지급을 중단한다는 것은 자신의 수입을 자신이 끊는 것이었고, 그것이 한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베네치아 귀족들은 채권자인 동시에 채무자인 국가의 통치자였다. 대평의회에 앉아 세금 정책을 결정하고, 그 세금 수입으로 자신들에게 이자를 지급했다. 국채는 지배계급의 재산을 지배계급의 권력으로 보호하는 장치였다. 베네치아 재정이 유례없이 투명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공정한 제도의 산물이 아니라, 채권자가 감시자를 겸하는 체제의 필연적 결과였다. 사익이 시스템을 투명하게 강제했다.

프레스티티는 강제 대출로 출발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외국의 왕자들이 그것을 사게 해달라고 대평의회에 허가를 구하고 있었다. 강요에서 욕망으로.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것이 아니었다. 시스템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1171년, 마르코는 관청 창구 앞에서 양피지를 품에 접어 넣었다. 등 뒤에서 썩은 수초와 소금이 뒤섞인 운하의 냄새가 났고, 그의 손은 양피지를 한 번 더 만지작거렸다. 세금인지 투자인지, 그는 그날 밤까지도 판단하지 못했다. 강제로 빼앗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망설임이 세계 금융의 씨앗이었다. 암스테르담의 은행가들도, 런던의 커피하우스 상인들도 훗날 같은 질문을 다른 이름으로 반복했고, 그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 각자의 운명을 갈랐다. 마르코가 접어 넣은 양피지의 냄새는 운하가 아니라 미래였다. 바다 위에서 그 미래를 통째로 복사한 나라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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