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장면
2024년, 중국 정부가 '신질생산력(新質生産力)'이라 부르는 전기차·태양광·배터리 산업의 수출액 합산은 약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숫자만 보면 압도적이다. 그러나 같은 해 부동산 개발업 및 관련 건설업이 중국 GDP에서 차지하던 비중은 여전히 20%를 웃돌았고, 그 산업은 2021년 고점 대비 투자액이 약 25% 줄어든 상태였다. 새것의 빛이 밝을수록 낡은 것의 구멍이 얼마나 깊은지 가려지는 법이다.
숫자로 보면 무엇이 중요한가: 신산업은 아직 구멍을 메우지 못한다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를 기준으로, 2023년 전기차·신에너지·반도체 등 이른바 '전략적 신흥산업'의 GDP 기여 비중은 약 8%다. 반면 부동산과 건설업을 합산한 전통 기간산업은 GDP의 약 25~28%를 차지한다. 신산업이 연간 20%씩 성장한다고 가정해도, 전통 산업이 연 5%씩 수축한다면 두 힘이 균형을 이루는 시점은 수년 뒤가 아니라 십수 년 뒤의 일이다.
더 주목해야 할 수치는 고용이다. 제조업 신흥 분야의 직접 고용 인원은 2023년 기준 약 2,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반면 부동산·건설 관련 직간접 고용은 중국 전체 도시 취업자의 약 13%, 수치로는 1억 명에 육박한다. 소비를 이끄는 것은 특허가 아니라 임금이다. 공장 자동화로 생산성이 오를수록 일자리 흡수력은 낮아진다.
수출 통계도 맥락이 필요하다. 중국의 전기차 수출은 2023년 약 177만 대로 전년 대비 77% 급증했지만, 이는 전체 자동차 수출 491만 대의 36%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자체가 아직 내연기관 시장의 20%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절대 금액이 인상적이더라도 세계 소비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중국 신산업의 성장 상한도 함께 제약된다.
1980년대일본의 첨단산업 도약과 '잃어버린 30년'의 씨앗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엔화는 2년 만에 달러 대비 약 50% 절상됐다. 일본 제조업은 이를 돌파하기 위해 반도체와 정밀기계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급격히 이동했다. 1980년대 후반 도쿄 증시 시가총액은 뉴욕을 넘어섰고, 도쿄증권거래소는 1989~1990년경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그러나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 있다. 첨단산업 투자의 상당 부분은 은행 대출로 조달됐고, 그 대출의 담보는 부동산이었다. 닛케이 지수는 1987년 10월 14일 2만 6,646엔으로 고점을 찍으며 자산 거품의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첨단산업의 도약은 실제였지만, 그것을 떠받치는 금융 구조는 허술했다. 1990년 이후 부동산 붕괴가 은행 부실로 이어지자, 성장하던 첨단산업도 자금줄이 막혀 침체 속으로 함께 빠져들었다.
오늘 중국의 장면과 구조적으로 겹치는 지점은 이것이다. 신흥산업의 약진이 실물 성과로 이어지려면, 그것을 뒷받침하는 금융과 내수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일본은 첨단산업이 '이미 기울기 시작한 자산 거품'을 막아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정책을 유지했고, 그 기대가 빗나갔다.
1990년대한국의 '반도체 기적'과 구 경제의 동시 몰락
1997년 외환위기 직전, 한국은 반도체 수출액이 전체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며 '기술 강국' 서사를 본격화하고 있었다. 삼성전자와 현대전자는 DRAM 세계 시장을 양분했고, 정부는 반도체 클러스터를 미래 성장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1996년 DRAM 가격이 개당 48달러에서 1달러 아래로 폭락하면서 수출 수입이 급감했고, 동시에 30대 재벌들이 끌어안고 있던 부채는 GDP 대비 400%를 넘어서 있었다. 신산업의 과실이 구 경제의 부채를 덮을 수 없었다.
한국의 사례가 일본과 다른 점은, 위기 이후 빠른 구조조정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IMF 구제금융이라는 외압 아래 부실 금융기관이 정리되고, 대기업 부채비율 상한이 강제됐다.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이것이 이후 한국 반도체 산업이 다시 도약하는 기반이 됐다. 중요한 교훈은 신흥산업이 구 경제의 부채를 흡수하는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신흥산업이 도약하려면, 구 경제가 먼저 정리돼야 한다.
이번에는 무엇이 다른가
일본과 한국의 사례는 민간 부채가 폭발한 뒤 외부 충격이 방아쇠를 당겼다. 중국의 경우 부채의 주체가 지방정부와 국영 개발업체라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중국 지방정부 산하 특수목적법인(LGFV, 地方政府融資平台)의 채무는 2023년 기준 약 66조 위안, 원화로는 약 1경 2천조 원에 달한다는 IMF의 추산이 있다. 이 부채는 시장이 아니라 국가가 통제하는 금융 시스템 안에 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외환위기나 뱅크런으로 폭발하지 않는다. 대신 느리게, 만성적으로 경제 전체의 성장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그래서 중국의 신산업 도약 앞에 놓인 현실은 단기 위기가 아니라 장기 침체의 문제다. 전기차 공장이 돌아가는 동안에도 지방정부는 교사 월급을 미루고, 소비자들은 자산 가치 하락에 대비해 지출을 줄인다. 신산업이 GDP 통계를 밀어 올려도, 사람들의 체감 소득은 그 속도를 따르지 못한다.
"생산력의 전환은 5년 안에 가능하다. 그러나 부채의 소화는 세대를 넘는다." — 리처드 쿠(Richard Koo), 노무라 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 대차대조표 불황 이론 중에서
앞으로 가능한 시나리오
신산업이 구 경제의 공백을 실질적으로 메우는 시나리오는, 내수 소비가 동반 회복될 경우에만 성립한다. 2025~2026년 중국 가계 소비 성장률이 GDP 성장률을 웃돌고, 청년 실업률(2023년 6월 공식 통계 잠정 중단 이전 기준 21.3%)이 의미 있게 하락한다면, 신흥산업의 고용 흡수력이 시장에서 확인되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중립적 경로는 현재의 구조가 5~7년간 유지되는 것이다. 신산업은 수출 중심으로 성장하고, 내수는 정부 지출로 간신히 버텨내며, 부동산은 완만하게 수축하는 형태다. 이 경우 중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대 중반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높다. 성장이 멈추지는 않지만, 과거처럼 세계 경제를 끌어올리는 동력이 되기는 어렵다.
비관적 경로는 지방정부 부채 문제가 중앙정부의 재정 여력을 소진시키는 경우다. LGFV 채무 재조정 과정에서 지역 금융기관이 연쇄 부실에 빠지고, 정부가 신산업 보조금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전기차·배터리 기업들의 과잉 생산 구조도 함께 흔들린다. 이 경우 수출 단가 경쟁이 더욱 격화되고, 미국·유럽의 관세 장벽은 더 높아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독자가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중국 신산업의 성패를 판단하는 기준은 생산 통계가 아니라 내수 소비 회복 속도다. 중국 소매판매 증가율이 3개월 연속 명목 GDP 성장률을 밑도는 국면이 이어진다면, 신산업의 수출 호조는 구 경제의 침체를 가리는 연막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참고자료
국제통화기금(IMF) —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