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재개방, 2025년판 석유 지정학의 귀환

호르무즈 재개방, 2025년판 석유 지정학의 귀환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 이 수로 하나가 세계 원유 무역의 3분의 1을 쥐고 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나

2025년, 세계 원유 수출의 약 21%가 통과하는 해협 하나가 미국과 이란의 협상 테이블 위에 다시 올랐다. 호르무즈 해협이다. 미국-이란 합의 소식은 글로벌 증시를 단숨에 끌어올렸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랠리는 주춤했다. 일본 중앙은행(BOJ)과 오스트레일리아 중앙은행(RBA)의 정책 결정이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장은 지금 '무역로 안도감'과 '통화정책 불확실성'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숫자로 읽는 호르무즈: 통념과 다른 수치 하나

호르무즈 해협의 중요성은 숫자로 가장 잘 드러난다. 2024년 기준, 이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는 하루 약 1,700만 배럴이다. 전 세계 해상 원유 교역량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이란 모두 이 좁은 수로에 수출 생명선을 걸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지점이 있다. 호르무즈 봉쇄를 가장 두려워하는 상대는 미국이 아니라 아시아다. 미국은 셰일혁명 이후 원유 자급률이 크게 높아져 순수출국으로 돌아섰다. 반면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68%, 일본은 약 88%, 인도는 약 60%를 중동에서 조달한다. 해협이 막히면 달러보다 엔화·원화·루피가 먼저 흔들린다.

통념과 반대인 수치가 하나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를 봉쇄해도 이란 자신의 원유 수출도 멈춘다. 이란 원유 수출의 약 90%가 이 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봉쇄는 이란에게도 양날의 검이다. 그래서 이란은 실제 완전봉쇄보다는 '봉쇄 위협'을 협상 카드로 써왔다.


1973오일쇼크가 남긴 교훈: 무역로는 곧 패권이다

1973년 10월, 아랍 산유국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한 서방 국가들에 원유 수출을 금지했다. 이른바 '아랍 오일 엠바고'다. 미국의 유가는 석 달 만에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네 배 뛰었다. GDP 대비로 환산하면 오늘날 약 60달러짜리 충격이었다.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주유소 앞에 줄을 서야 했다.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닉슨 행정부가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즉각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시작했지만, 가장 결정적인 대응은 훨씬 조용하게 진행됐다.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비밀 협상을 맺어, 사우디의 석유 달러 수입을 미국 국채에 재투자하는 대신 군사 안보를 보장했다.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탄생이다. 무역로 위기가 국제통화 질서 자체를 재편한 사례다.

오늘의 호르무즈 합의와 구조적 공통점은 여기에 있다. 에너지 무역로의 개폐는 단순한 물류 문제가 아니라 달러 패권, 중앙은행 정책, 아시아 무역 수지 전체를 흔드는 지정학적 레버다. 1973년이 달러와 석유를 결합시켰다면, 2025년의 합의는 그 결합이 아직 유효한지를 시험하고 있다.


2019호르무즈 긴장, 증시는 반응했지만 무역은 달랐다

2019년 여름, 이란 혁명수비대는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를 억류했다. 같은 해 사우디 아람코의 아브카이크 정유시설이 드론 공격을 받아 사우디 원유 생산의 약 5%가 하루 만에 멈췄다. 유가는 단 하루 만에 14.6% 급등했다. 역사상 가장 큰 하루 상승폭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충격은 6주 안에 완전히 흡수됐다. 사우디가 생산을 빠르게 복구했고, 미국 셰일 생산자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글로벌 무역량 자체는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시장의 공포와 실물 무역의 결과 사이에 큰 괴리가 있었던 셈이다.

오늘과의 차이는 중앙은행 환경이다. 2019년의 연방준비제도(Fed)는 금리를 내리는 방향에 있었고, BOJ는 이미 초저금리를 유지 중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BOJ는 수십 년 만의 금리 정상화 경로 위에 있고, RBA는 인플레이션과 성장 둔화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지정학적 안도감이 시장 랠리를 지속시키기엔 통화정책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이번에는 무엇이 다른가

2019년과 1973년의 공통점은 에너지 공급 충격이 중심이었다는 점이다. 이번엔 그 충격이 협상으로 해소됐고, 시장은 즉각 환호했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다. 1973년의 충격은 수요를 단번에 억눌렀지만, 지금의 시장은 공급 안도와 통화 긴축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 환경에 놓여 있다. 호르무즈가 열려도 BOJ가 금리를 올리면 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고, 그 여파는 아시아 전역의 자산 가격을 흔든다.

무역로 안도감이 중앙은행의 긴축 신호를 이기기 어려운 구조다. 1973년엔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에 뒤처져 있었고 금리는 사후에 올랐다. 지금은 중앙은행들이 먼저 행동하고, 시장은 그 신호를 선반영한다. 안도 랠리가 반나절 만에 식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 가능한 시나리오

합의가 공고해질 경우, 호르무즈를 통한 원유·LNG 물동량이 정상화되면서 아시아 무역수지 부담이 완화된다. 한국과 일본의 에너지 수입 단가가 낮아지고, 무역적자 압박이 줄어들면 원화와 엔화 모두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이 경로가 열리려면 이란의 핵 합의 이행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수준에서 실질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합의가 유지되지만 중앙은행 긴축이 예상보다 길어지는 시나리오가 기본 경로다. 원유 공급 불안은 해소됐지만 BOJ의 금리 인상 속도에 따라 엔 캐리 청산이 글로벌 채권·주식 시장의 변동성을 높인다. 에너지 안도와 금융 불안이 서로 상쇄되며 시장은 좁은 박스권에서 움직인다.

합의가 이란 내부 강경파의 반발로 흔들리는 경우, 2019년 아람코 공격 때보다 더 큰 공급 불안이 재점화될 수 있다. 이란이 해협 통행을 다시 위협하는 시점에 주요국 중앙은행이 아직 금리 인하 여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1970년대식 에너지-인플레이션 복합 충격이 소규모로 재현될 수 있다. 이 경로는 이란 내 혁명수비대와 온건파 간의 권력 균형이 무너질 때 현실화된다.


독자가 기억해야 할 한 문장

호르무즈 합의의 진짜 내구성은 유가가 아니라 BOJ의 다음 금리 결정과 IAEA의 이란 핵 사찰 보고서, 두 가지가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비로소 확인된다. 에너지 무역로가 열렸어도 중앙은행의 문이 좁아지고 있다면, 안도 랠리는 출발점이 아니라 함정일 수 있다.


참고자료

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 Strait of Hormuz: World's Most Important Oil Transit Chokepoint

International Energy Agency — Oil Market Reports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 Geopolitical Risk and Oil Price Volatility

함께 읽으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