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나
2026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케빈 워시(Kevin Warsh)는 인공지능이 생산성을 끌어올려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고, 결과적으로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논리를 공개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가 준거로 삼은 인물은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이다. 1990년대 후반 그린스펀은 인터넷 혁명이 공급 측 충격으로 작용해 경제가 과열 없이 팽창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금리 인상을 자제했다. 문제는, 워시가 그 교훈의 일부만 가져오고 있다는 점이다.
침묵하는 생산성 데이터가 말하는 것
AI가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주장의 핵심은 공급 측 생산성 향상이다. 생산성이 오르면 같은 양의 화폐로 더 많은 재화를 살 수 있어 물가 상승 압력이 완화된다. 중앙은행은 이 상황에서 굳이 고금리로 수요를 억제할 필요가 줄어든다. 이것이 이른바 '공급 확장형 비인플레이션 성장' 시나리오다.
그러나 현재 수치는 이 낙관론을 온전히 뒷받침하지 않는다. 미국 노동통계국(BLS) 자료에 따르면, 2023~2025년 미국 비농업 부문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연평균 약 2.2%로, 인터넷 붐이 절정이었던 1995~2000년의 연평균 2.8%에 미치지 못한다. AI 관련 민간 투자액은 2025년 기준 GDP 대비 약 1.5%로 빠르게 늘고 있지만, 생산성으로 전환되는 데는 통상 5~10년의 시차가 존재한다는 것이 경제학의 오랜 관찰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솔로우(Robert Solow)가 1987년 남긴 말, "컴퓨터 시대는 어디서나 보이는데 생산성 통계에서만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AI 시대에도 유효할 수 있다.
더 주목할 수치는 연준이 주시하는 근원 PCE(개인소비지출) 물가다. 2025년 말 기준 여전히 2.5% 안팎으로 연준의 목표치 2%를 웃돌고 있다. 생산성 통계가 아직 AI 효과를 포착하지 못하는 동안, 물가는 여전히 중립금리를 높게 유지해야 하는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1996~2000그린스펀의 도박: 새 경제론의 실제 내막
앨런 그린스펀은 1996년 '비이성적 과열'을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인터넷 기술 혁명이 경제의 공급 능력 자체를 높여, 수요가 늘어도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이른바 '신경제(New Economy)' 논리를 채택했다. 실제로 1995~2000년 미국 실업률은 4%대로 떨어졌지만 핵심 물가는 비교적 안정을 유지했고, 연간 실질 GDP 성장률은 4%를 넘나들었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그린스펀 자신도 내부적으로 이 판단에 상당한 불확실성을 안고 있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보면, 1990년대 후반 그린스펀은 생산성 증가의 지속성에 대해 동료들에게 여러 차례 유보적인 표현을 썼다. 신경제론은 그가 시장에 내보인 메시지보다 훨씬 조건부였다. 그리고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이후 미국 나스닥 지수는 고점 대비 78% 하락했고, 연준은 기준금리를 2001년 한 해에만 475bp(1bp=0.01%포인트) 인하했다.
워시가 그린스펀에게서 배운다고 할 때, 이 뒷이야기까지 계승하고 있는지가 핵심이다. 생산성 낙관론을 근거로 금리를 낮추는 결정은, 그 낙관론이 틀렸을 때 정책 여력이 급격히 소진되는 구조를 만든다.
1919~1929기술 호황기의 통화 정책, 또 다른 선례
1920년대 미국에서는 전기, 자동차, 라디오라는 세 가지 기술 혁명이 동시에 터졌다. 포드(Ford)의 T형 자동차 생산단가는 1909년 825달러에서 1925년 260달러(2020년 불변가격 기준 약 4,400달러)로 떨어졌다. 기업 이익은 급등했고, 뉴욕 증시는 1921~1929년 사이 약 500% 상승했다. 연방준비제도는 이 시기 전반적으로 완화적 통화 정책을 유지했다. 기술이 생산성을 높이고 있으니 인플레이션 걱정은 없다는 논리였다.
그 결과는 역사가 기록하고 있다.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됐을 때 미국 도매물가는 10년간 오히려 완만히 하락해 표면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없었지만, 자산 가격 거품과 과잉 신용이 실물 경제 전체를 취약하게 만들어 놓았다. 기술 주도 생산성 향상이 소비자물가를 낮게 유지시켜 중앙은행의 경보를 꺼버린 것, 이것이 1920년대 통화 정책의 구조적 맹점이었다.
오늘의 상황과 공통점은 명확하다. AI가 특정 재화의 가격을 낮추거나 서비스 효율을 높이면 소비자물가 지표는 안정되어 보일 수 있다. 그 안정이 진짜 균형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쌓이는 불균형을 가리는 베일인지를 구별하는 것이 2026년 통화 당국의 진짜 과제다.
이번에는 무엇이 다른가
1990년대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출발선의 물가 수준이다. 그린스펀이 신경제론을 채택할 당시 핵심 물가는 이미 2% 안팎에서 안정되어 있었다. 지금 연준은 2021~2023년 고인플레이션의 여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AI 낙관론을 논의하고 있다. 같은 생산성 논리라도, 물가가 이미 안정된 뒤에 적용하는 것과 안정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앞서 적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위험을 수반한다.
또 하나의 차이는 노동시장 구조다. 1990년대 기술 혁명은 주로 화이트칼라 사무직의 생산성을 높였다. AI는 지식 노동 전반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 수요 자체를 억누르는 힘이 더 클 수 있다. 노동 수요 감소는 임금 상승을 억제해 물가를 낮추는 경로로 이어질 수 있지만, 동시에 가계 소비 기반을 약화시켜 경기 하강 압력을 높인다. 금리를 낮출 이유가 '호황형 공급 확장'이 아니라 '수요 위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는 같아 보여도 처방의 논리가 완전히 다르다.
앞으로 가능한 시나리오
AI 생산성이 2027년까지 BLS 통계에 명확히 반영되어 연간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3%를 지속적으로 넘어설 경우, 연준은 인플레이션 부담 없이 기준금리를 현재보다 100~150bp 낮출 수 있는 정책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이 경우 1990년대 후반과 유사한 '황금기' 서사가 다시 쓰일 수 있다. 단, 이 시나리오는 AI 투자가 실제 총요소생산성(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지표)으로 전환될 때만 성립한다.
중간 경로는 AI 효과가 부문별로 불균등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금융, 법률 서비스 등 일부 산업에서는 비용이 급감하지만, 건설, 의료, 교육 등 대면 서비스 부문은 여전히 높은 비용 구조를 유지하는 경우다. 이때 연준은 금리 인하 명분과 인상 압력을 동시에 받는 엇갈린 신호 속에서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이 시나리오에서 금리는 낮아지기보다 오래 높게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AI 낙관론이 과장된 것으로 판명될 경우, 즉 생산성 데이터가 2028년까지도 뚜렷한 상승을 보이지 않을 경우, 연준이 AI 기대감을 앞세워 조기에 완화로 선회했다면 물가 재상승 국면에서 신뢰를 잃는 최악의 결과를 맞을 수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 장기 국채 금리는 오히려 오르고 연준의 정책 여력은 크게 줄어든다.
"생산성 혁명은 사후에만 확인된다. 사전에 확신하는 중앙은행은 항상 다음 위기의 공범이 되었다."
독자가 기억해야 할 한 문장
미국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3개 분기 연속으로 3%를 넘어서고 동시에 근원 PCE가 2% 아래로 내려올 때, 그때 비로소 AI발 금리 인하 논리는 데이터에 근거한 것이 된다. 그 이전에 나오는 금리 인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에 베팅하는 것이다.